한국학술진흥재단은 일반인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대학사회에서는 막강한 힘을 가진 곳이다. 지난해 1,800여억원을 학술활동에 지원했고, 1조 4,000억원이 투입되는 두뇌한국21(BK21)사업을 관리하고 있다.그 뿐 아니다. 대학 사회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학술지 평가사업도 1998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연구지원비라는 당근을 통해 학술계의 경쟁력 강화라는 채찍을 휘두르는 독려자이자 감시자인 셈이다.
학술진흥재단이 6일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창립 첫해 총 연구지원비가 4,000만원에 불과했던 재단은 이제 명실상부한 학술 지원의 핵심 센터로 자리를 잡았다.
"재단 운영에 가장 중요한 키는 공정성 문제였다." 3년 임기를 마치고 16일로 퇴임하는 학술진흥재단의 박석무(朴錫武ㆍ59) 이사장은 자신의 가장 큰 공적으로 '공정한 재단 운영'을 꼽았다.
돈이 흘러나오는 곳에서는 뒷말이 무성한 법이다. 재단의 연구비 지원을 두고 '학연ㆍ지연에 따른 나눠먹기식 분배'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학술지 평가 사업도 결국 공정성이 관건이다. 재단은 자체적으로 98년부터 학술지 등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700여개 학회, 2,400여개 대학부설 연구소 등이 발간하는 4,000여종의 학술지 중에서 제대로 된 학술지만 등재해 연구 지원의 자료로 삼을 방침이다. 이는 학술지 구조조정과 동시에 학회 통폐합과도 직결돼 있다.
"적지 않았던 잡음이 이제 쏙 들어갔다"며 공정성에 자신감을 보이는 그는 "재단의 특성상 공정성이 흔들리면 재단의 존립자체도 흔들리기 때문에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전문가들의 엄정한 심사에 힘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가 이뤄 놓은 개혁이 공정성 확보만은 아니다. 대학 교수만 지원비를 받을 수 있던 상황에서 연구계획만 좋으면 연구진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로마법이나 산스크리스어 등 시장성이 없어 소외받고 있는 인문학에 대해 연 10억원 정도로 지원하고 있고 올해 '연구교수제'를 신설, 강사들에 대한 지원제도도 마련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의 학술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교수나 강사 등 대학의 연구인력은 10만명 수준이지만 재단의 혜택을 받는 수는 3,000명 정도로 3%에 불과하다. 미국은 30%, 일본은 20%선에 이른다. 다음 이사장에게 넘겨야 할 짐인 것 같다."
13,1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박 이사장은 실학자 다산 정약용 전문가로 통하는 인문학자다. 다산 관련 책만 10권을 넘게 펴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인문과학 대 자연과학의 수혜 비율이 3대7에서 5대5로 바뀐 것도 인문학에 대한 그의 애정 탓일 것이다. 퇴임 후 그는 호남대 교수로 강단에 서게 된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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