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단임 대통령제인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에는 장점과 단점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굳이 뜯어 고쳐야 할 만큼 단점이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본다.문제가 있다면 제도상의 권력구조에서 보다는, 그 운영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야 일각에서 불쑥불쑥 개헌론이 제기되고, 점차 그 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여간 심상치 않은 일이다.
결론적으로 개헌론 제기는 사리에 합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의적으로도 심히 부적절하다. 지금 나라 안팎에는 경제를 위시해 풀어야 할 화급한 난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개헌을 논의하는 것은 그 다음 다음의 일인 것이다.
개헌논의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사리에 합당하지 않다. 첫째, 개헌론의 동기에 의심이 간다.
개헌론자들은 입으로는 국가 발전이나 민주주의 발전을 운위하지만 속 뜻은 다른 데 있다. 여당 사람들은 차기 정권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야당 사람들은 당내 위상 제고 등 개인적 이익에 뜻을 두고 있음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둘째, 개헌의 당위성 자체에 논리적 모순이 있다.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레임덕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중임제를, 대통령을 견제하고 지역감정 완화를 위해 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에는 모순이 있다. 우리 정치 풍토상 중임제에서 오히려 책임정치는 퇴색할 가능성이 높다.
권력이 재집권에 관심을 둔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 나겠는가. 모든 대통령이 연임하는 사태가 일어 날 것이다.
지역감정 완화도 마찬가지다. 영호남 외에 다른 지역에서 후보를 내지 말라는 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중심제에서 부통령이 대통령을 견제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는 상대적으로 소수기반 정당이 다수기반을 끌어들이기 위한 당략적 논리에 근사한 것이다.
셋째, 국민이 원하지 않고 있다. 일부 논자들은 국민 상당수가 찬성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야말로 근거 없는 얘기다.
민주당 소속 조순형 의원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16대 국회는 개헌을 추진할 정치ㆍ도덕적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양심적인 말이다.
의당 16대 총선에서 개헌을 전제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했다. 또한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 개헌선을 확보한 정당도 없다.
개헌론자가 많은 여당도 3당 연합을 통해 겨우 과반선을 넘긴 처지다. 16대는 정치ㆍ도덕적으로 개헌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정치권이 개헌을 논의하려면 대선 때 DJP 합의로 국민과 약속한 내각제 개헌논의를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여당 사람들은 특히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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