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적 우선'의 정치논리와 '우리도 광역시'라는 지역논리에 편승, 앞 다투어 지하철 건설을 추진해 온 대구 대전 광주 등 대도시들이 빚더미에 허덕이며 시민부담과 불편만 가중시키고 있다.8일 건설교통부와 이들 3개 광역시에 따르면 대구 지하철은 대구시가 조달해야 하는 건설비(시 분담금)를 마련하지 못해 2~6호선의 완공시기가 연기되거나 건설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운행 중인 1호선마저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단선노선의 불편함 때문에 지하철을 시민들이 기피하면서 당초 14%로 예상됐던 지하철 수송분담률은 1999년 7.0%에서 작년 6.6%로 감소했고 운영적자는 지난해 237억원(하루평균 6,500만원)에서 올해 346억원(1억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지하철을 건설 중인 광주와 대전은 공사를 계속하지도, 중단하지도 못하는 아예 '계륵(鷄肋)'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광주와 대전은 96년 동시에 1호선 공사를 시작했지만 시 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 완공시기를 각각 2002년, 2003년에서 4년 연기했다.
1개 노선을 건설하는 데만 두 도시 시민들이 11년, 12년씩 교통혼잡과 소음을 감수해야 하게 됐다.
이에 따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광주와 대전의 지하철 건설을 백지화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광주의 경우 "환상형 도시이기 때문에 제2순환도로 건설을 앞당기는 것이 낫다" 는 시민여론을 종합, 지역시민단체들이 내달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전에서도 "지금이라도 타당성을 재검토, 다른 대안을 모색하자""기왕에 파놓은 땅 되메울 수는 없다"는 논란이 팽팽하다.
90년대 초 광역시마다 지하철 건설붐이 일어났던 것은 치적을 우선하는 위정자들의 정치논리에 해당 지자체의 과다한 지하철 수요 추정, 건설 관료들의 도식적인 지역균형개발론,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한 시민들의 지역논리 등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특히 원칙적으로 지자체가 부담하던 지하철 건설비를 90년대 들어 중앙정부가 상당액을 지원하면서 광역시의 건설붐은 더욱 거세졌다
'3저 호황'을 누리고 있던 90년, 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이 지하철을 6대 전 광역시로 확대하기로 하고 91년 대구지하철을 착공했고,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광주ㆍ대전ㆍ인천에도 지하철을 건설하겠다는 선거공약을 실천했다.
서울시립대 손의영(孫義榮ㆍ도시공학) 교수는 "이들 3개 광역시는 서울과 연계된 인천이나, 일직선형 도시인 부산과 달리 지하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힘든 환상(環狀)형 도시란 점에서 시민들로부터 외면과 배척을 당하고 있다"며 "지하철 건설을 경제적 논리로 접근하지 않아 10년이 지난 지금도 지방재정 악화→공기 연장→시민불편→재검토 논란 등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빚더미'지방지하철
지난 4일 오전 8시 대구 지하철 1호선 동대구역 승강장. 출근시간인데도 겨우 7~8명의 승객이 진천행 열차를 기다리며 드문드문 서 있다.
맞은편 월배행 승강장에는 5명. 객차 안에는 빈 자리마저 눈에 띈다. '지옥철'로 불리는 서울의 평일 출근시간 지하철과 비교하면 '천국 철'이다.
97년 1호선 개통이후 매일 아침 해안역에서 대구역까지 통근을 하고 있는 김모(49)씨는 "지하철에서 서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며 "이 정도면 선진국 수준"이라고 예찬했다.
김씨의 찬사처럼 대구 지하철 1호선은 1998년, 1999년 연속으로 전국 지하철 중 고객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선진국형 전철'의 이면에는 이용률 저조로 매년 수백억원씩 쌓여가는 운영적자의 어두움이 자리하고 있다.
▦가지도 서지도 못하는 '절름발이' 대구
지하철 1호선의 3월말 현재 1일 평균 이용객 수는 14만명. 수송분담률은 7%가 안 된다. 30만명 이상의 일일 이용객을 예상하고 건교부 승인을 얻어냈던 사업계획의 절반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서비스만족도는 높지만 정작 지하철의 존재 이유인 '시민의 발'과는 거리가 멀고 운영적자만 하루에 8,000만원 이상이다.
지하철 이용률이 저조한 근본적 이유는 단선노선이라는 점. 대구지하철공사 김종락(金鍾洛) 경영팀장은 "도시가 사방으로 발달한 대구의 경우 1개 노선으로는 의미가 없다"며 "교통체계망을 갖추기 위해서는 최소 순환선인 4호선까지는 개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재정. 1호선 건설로 진 빚이 아직 5,000억원 이상 남아있고 현재 건설중인 2호선 사업비의 시 부담도 1조원이 넘는다. 때문에 대구시는 기본계획에 포함된 3호선 건설마저 잠정 유보했다.
대구 계명대 김기혁(金基赫) 교수는 "계속 추진할 수도, 그렇다고 절름발이 상태로 둘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 표현했다. 지역 시민단체 등에선 치밀한 타당성 분석 없이 사업을 추진한 당국의 무모함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대구 경실련 조광현사무처장은 "당초 지하철 건설비용의 1%만 투입해도 시내버스 운용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충분한 검토와 의견수렴 없이 일단 벌이고 보자는 치적 위주의 사업추진이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부담만 늘렸다"고 꼬집었다.
▦6년째 중단논란 끊이지 않는 광주ㆍ대전 지하철
광주ㆍ대전은 6년째 1호선 공사를 해오고 있지만 건설중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인 부채와 교통체증을 유발시키면서까지 굳이 건설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 때문이다.
96년 착공 전부터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 지하철 건설을 반대해온 광주의 경우 아직까지 "광주는 환상형 도시이기 때문에 지하철보다 제2순환도로 건설을 앞당기는 것이 낫다"
"엄청난 적자가 뻔한데도 계속 건설한다는 것은 지자체의 치적 쌓기일 뿐" "건설은 하되 재정여건이 호전된 이후로 운행을 연기하자" 등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예산부족으로 1호선 완공시기도 당초 2004년에서 2007년으로 연기돼 시민불편이 커지고 있는데다 1호선을 완공하더라도 2호선 건설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대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발전연구소 등 시민단체는 이 같은 시민 여론을 수렴, 5월중에 대규모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대전도 상황은 비슷하다.
6년째 1호선 공사(2006년 완공예정)를 하면서 시내 곳곳에 교통체증이 심화하자 대전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시민의 발이 되겠다던 지하철이 고통만 주고 있다"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대전시 한 시의원은 "한해 100억원 정도밖에 부담하지 못하는 시재정으로 과연 천문학적인 사업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고 말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금홍섭(琴洪燮) 사무국장은 "대구ㆍ광주도 한다니까 대전도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정치논리가 지금의 화를 자초했다"며 "지금이라도 지하철 사업의 적정성을 재검토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만섭(申萬燮) 대전시 지하철 건설본부장은 "적자운영이 예상되지만 교통난 해소를 위해 지하철은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대로 가면 재정파탄
지난해말 현재 서울시 지하철 관련 채무는 5조2,006억원으로 전체 부채의 82.5%를 점하는 등 대부분의 시도에서 지하철이 지자체 재정부실의 근원이 되고 있다.
부산시는 올 한해만 부산지하철 2,3호선 공사비의 절반인 2,259억원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 같은 부담은 인건비와 대형 계속사업을 제외한 연간 가용자원 3,000억원에 육박, 다른 사업투자는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대구시청 김인환(金寅煥) 예산담당관은 "2000년 말 현재 대구시의 총부채 1조7,088억원 중 지하철 건설로 인한 부채가 6,658억원으로 38.5%에 달한다"며 "지하철이 시 재정 고갈의 절대 요인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와 대전은 잦은 설계변경과 연기로 1호선 공사비가 당초 추정치보다 각각 3,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대전시는 1호선 공사에 지금까지 2,919억원을 투입한데 이어 앞으로도 5,903억원을 더 투입해야 하지만 재원조달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에 따라 각 자치단체들은 현재 50%인 지하철 건설 국고지원율을 70~80%대로 올려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으나 건교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매년 누적되는 운영적자도 문제다. 부산지하철 운영기관인 부산교통공단은 운영적자 누적에 따라 87년 창단 당시 8,689억원이던 부채가 지난해 말에는 2조2,891억원으로 불어났다.
대구의 경우 99년 167억원, 2000년 237억원, 올해 346억원(추정) 등 운영적자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대구지하철공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1구간 지하철 요금이 600원인데 수송원가만 따져도 최소 2,400원은 되어야 한다"며 "현 요금체계로는 적자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부산=박상준기자 sjpark@hk.co.kr
대전=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인천=송원영기자 wyoung@hk.co.kr
대구=노원명기자 narzis@hk.co.kr
광주=김종구기자 sori@hk.co.kr
■전문가진단
실타래처럼 얽히고 설킨 지방 지하철 건설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전문가들도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재정부담도 줄이고, 당초 계획대로 지하철도 완공하는 두 마리 토끼 잡기식의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이미 착공에 들어간 지하철은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미착공 노선은 경(輕)전철로 전환하든지 아니면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는 게 차선책이라고 주장했다.
수백억원대의 설계비를 날리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경전철은 현행 중(重)전철과 달리 규모가 적고(보통 4량), 고가(高架)나 노면에 선로를 설치할 수 있어 건설비용(1㎞당 500억~600억원)을 50% 정도 줄일 수 있다.
다만 시간당 수송능력이(8,000~2만명) 중전철의 3분의 1수준이며, 지상에 건설할 경우 도로의 일부를 차지하게 된다.
서울시립대 손의영(孫義榮) 교수는 "대구 3호선, 대전ㆍ광주 2호선 등에 대한 재검토 결과가 곧 나오겠지만 경전철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수익모델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백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경전철로 계획했다면 지방재정에 이정도로까지 부담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지자체가 비경제적 논리로 지하철 건설을 무리하게 추진한 것과 사업이 클수록 중앙정부 보조도 클 것이라며 비싼 시스템(중전철)을 고집한 것이 현재 '지하철 딜레마'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교통개발연구원 이창운(李昌雲) 박사는 "지방 대도시도 지하철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현재 지자체의 재정능력으로는 계획된 지하철 건설은 불가능하다"며 "미착공 노선은 경전철로 전환, 건설비용을 줄이되 국고 지원비율을 현행 50%에서 70%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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