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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빚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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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빚 권하는 사회

입력
200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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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단편 '진주 목걸이'에서 주인공 마틸드 부부는 빚 때문에 그야말로 인생이 망가진 경우다. 파티에 가려고 친구에게 빌렸다가 잃어버린 진주목걸이(모조품)를 진품으로 오해했던 것이 발단이었다.분실 사실을 감춘 채 똑 같은 물건을 사서 돌려주기 위해 거액의 빚을 내고, 이를 갚느라 청춘의 허리가 휘어버린다. 19세기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에서처럼 인생의 줄거리마저 바꿀 수 있는 것이 빚의 본질이다.

■그러나 빚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에는 시대에 따라 경중(輕重)의 변화가 있는 모양이다.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빚지는 것을 죄악시 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 빚을 친구처럼 가깝게 대하기 시작했다 한다. '집 떠날 때 신용카드를 꼭 챙기세요'라는 당시 광고 출현이 이 같은 변화의 상징이었다.

드디어 80년대에는 빚 얻어 쓰는 것을 오히려 즐기기에 이르렀다는 게 이 신문의 지적이다.

■우리도 닮아가는 것 같다. 당국의 여러 발표자료에서 그런 냄새가 난다. 가계를 비롯한 개인부문의 전체 빚더미가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지난 3년 사이에 기업부문 부채가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이다. 가계의 흑자수지는 최근 수년간 줄곧 내리막이며, 신용불량자는 기하급수적인 증가 추세다.

이렇게 국민 개개인의 빚이 늘어난 것은 환란의 여파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빚 얻어 쓰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환란 이후 기업에 쓴 맛을 봤던 금융기관들이 개인에게 눈을 돌려 '돈 갖다 쓰라'고 아우성이다. 재벌 소유 신용카드회사들의 무차별적인 카드발급, 은행의 인터넷 대출 등 첨단 구애작전에 '빚내서 소 잡아 먹는다'는 심리가 발동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금융기관들은 티끌 모아 태산을 이루고, 정부는 세수가 늘어 싱글벙글한다. 말이 좋아 개인에 대한 신용 확대이지 실인즉 개인의 지갑을 노려 총력 경쟁하는 '빚 권하는 사회'다. 미국식 잘못 따라가다가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꼴 난다.

/송태권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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