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이난 섬에 불시착한 미군 첩보기를 둘러싼 미ㆍ중의 힘겨루기가 고비에 이른 느낌이다. 독일 신문 쥐드도이체 차이퉁은 사태를 할리우드 서부영화 제목에 빗대 '하이난의 하이눈(High-noon)'이라 불렀다.영화의 우리 식 제목이 OK 목장의 결투였으니, 하이난의 결투인 셈이다. 21세기 세계 질서를 양분할 것이란 두 나라의 기세 다툼이 치열한 상황이어서 지나친 과장은 아니다. 오히려 신냉전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고려하면, 절묘한.
■서부영화는 권선징악 구도가 분명해 스릴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하이난의 결투는 이게 불분명한데다가 자칫 유탄에 맞을 수 있어 관전하기가 불안하다.
미국에 생명 줄을 댄 대만조차 원만한 해결을 희망한다며 숨을 죽였다. 이런 판국에 뉴욕 타임스가 3일 "한국 전문가들은 사태를 중국의 공격성의 발로로 보고 우려한다"고 보도한 것은 무슨 엉뚱한 소리인가 싶다. 마치 야구장 외야 중립석 관중을 멋대로 제 쪽 응원단으로 끌어 들이는 형국이다.
■중립이 상책이지만, 우리 나름대로 시비를 가려 둘 필요는 있다. 선전성 짙은 일방적 주장과 보도를 무작정 좇다 보면, 영화가 끝난 뒤 메시지가 뭔지 몰라 어리벙벙한 꼴이 될 수 있다.
국제 언론과 국제법 전문가들도 엇갈리지만, 객관적 견해로는 중국쪽 명분이 여러모로 우세하다. 영공 침범 여부를 떠나 중국 전투기와 충돌사고를 일으킨 첩보기가 불시착한 이상, 중국에 사고 조사를 위한 기체 수색권이 국제 관습법상 인정된다는 것이다.
■고도 스파이 기능을 지닌 첩보기가 무단 착륙했기 때문에 승무원을 간첩혐의로 다룰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노골적 적대관계가 아니면 승무원과 기체는 송환하는 것이 관례다. 중국이 전투기 조종사 희생을 강조하고 미국이 일단 유감을 표한 것은, 이쯤에서 타협할 조짐으로 보인다.
스파이 기밀 유출 위험을 떠든 것은 공연한 우려이거나 흑색 선전이다. 우리가 정작 관심 가질 일은, 한판 결투를 벌인 미ㆍ중 관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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