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3일) 이후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지적하는 여론이 고조되자 몹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빠르게 정부쪽으로 비난의 화살이 쏠리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정부 관계자는 5일 "질책에 담겨진 국민의 뜻을 잘 알고 있지만 국민감정만을 전적으로 담아내기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국민정서도 충족시키면서 한일 외교를 경색국면으로 몰고가는 조치는 피해야 하는 2중과제를 동시에 충족시킬 묘책을 찾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부는 4일 관계기관 실무 대책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회의 결과 취해진 조치는 주한 일본대사를 통한 경고 메시지 전달이 고작이었다.
주한 일본대사 초치가 단기적 조치의 전부가 아니며, 중ㆍ장기적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일본 교과서를 정밀 분석해 일본측의 역사기술과 사관을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반박할 이론무장을 한 뒤 구체적 대응수순을 밟겠다는 설명도 따른다.
하지만 즉각적이고 강도 높은 대응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요구에 비해 이 같은 대응은 '소걸음'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가 "교과서 문제는 교과서 문제로 풀겠다"는 원칙에 매달림으로써 스스로 대응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응책과 관련해 정부는 크게 '교과서적 사안'과 '비교과서적 사안'으로 구분하고 있다. ▦왜곡 내용 재시정 촉구 ▦왜곡 방지를 위한 근본적 대책 촉구 등이 전자에 해당하고, ▦대일 문화개방 연기 ▦한일 청소년 교류사업 취소 ▦정부 공식문서 천황표기 수정 등이 후자에 속한다.
1998년 10월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결과로 실행되고 있는 후자의 조치를 교과서 문제 해결과 연계할 경우 한일 우호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우려다.
단기적 항의 방법이 성명 발표와 주일대사 초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정부가 학계와 연대해 '우리 역사관 확립' 운동을 전개하는 장기적 처방을 선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간 과거사 인식의 토대가 되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정신을 깨뜨린 주체가 일본이라는 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일 항의 방법을 보다 선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사 전문가들은 "일본의 우익 교과서 검정 통과에 깃든 보수화ㆍ군국주의화의 어두운 징조를 경계하기 위해 보다 강도 높은 대응이 요구된다"며 "정부가 한일 우호관계를 앞세워 역사 왜곡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등한시 할 경우 일본의 의도를 용인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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