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과 가해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일본 역사교과서의 검정 통과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적 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자기중심적 사관에 입각해 한일 관계를 비틀고 뒤집어 놓은 역사교과서가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는 사실은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우호ㆍ협력 시대를 열어가자는 1998년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 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은 3일 발표한 담화에서 "이번 역사교과서 검정은 근ㆍ현대사 서술에 있어 이해ㆍ협조의 관점에서 관련국을 배려한다는 '근린제국 조항'을 포함한 검정기준에 의해 신중하게 이뤄졌다"고 말했다. 검정 과정에서 한국ㆍ일본 등 주변국의 우려를 충분히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군대위안부 문제를 완전히 삭제하거나 소극적으로 서술하고,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둔갑시킨 사실이 과연 일본이 주변국 국민들의 마음에 벽을 쌓지 않도록 해줄 것을 기대해온 한국과 중국 국민들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검정 결과 발표가 나온 뒤 반대 여론이 들끓었던 1982년 역사교과서 파동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지난 해부터 우리 정부의 끊임없는 '사전 우려 표시'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일본측의 처사는 한일간 역사 인식을 1980년대 수준으로 돌려놓은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현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는 순풍의 돛을 달고 진전해 왔다. 1998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간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에 따라 양국간 문화 개방이 이뤄지고, 청소년ㆍ역사 교사 상호 방문 등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특히 2002년 '월드컵 공동 개최'와 '국민교류의 해' 행사를 통해 양국은 한 단계 성숙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일본의 잇단 역사 왜곡은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함으로써 한일 관계의 축으로 작용해온 '파트너십 공동 선언'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본측이 우리 정부의 우려와 항의 전달에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1982년 역사교과서 파동이나 독도 분쟁 이상의 외교 마찰이 발생할수도 있다.
물론 우리 정부도 한일 관계의 파국을 원치는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의 대응은 어디까지나 일본이 역사 왜곡을 바로 잡고,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근본 대책을 세우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의 인내는 어디까지나 일본측의 성의 있는 노력을 전제로 한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의 역사 왜곡은 한일 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해 일본 측의 향후 태도에 따라 대응의 강도를 높여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일본측이 "특정 교과서의 역사 인식이 일본 정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형식 논리에서 벗어나 우리의 요구에 부응하는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한일 관계는 '흐림' 상태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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