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내 자식이자 나를 가르친 인생의 스승입니다. 같이 기뻐하고 아파하며 서로 보듬고 쓰다듬으며 나무와 더불어 자라온 한평생이죠."28년간 나무와 함께 살아온 '나무 인생'이 있다. 주인공은 경희대 관리과 기능직 조경반장 팽정식(彭正植ㆍ52)씨. 캠퍼스 내 250여종 18만여그루의 나무를 관리하고 있는 팽씨는 긴 세월을 나무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팽씨가 나무와 인연을 맺은 건 1973년. 군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와 매형의 조경사업을 돕다 나무에 빠져 버린 팽씨는 같은 해 9월 경희대 조경사로 들어 왔다.
91년 본관 앞의 250년 된 소나무가 솔잎혹파리로 열병을 앓으며 고사위기에 처했을 땐 팽씨도 같이 앓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잤죠. 막걸리가 좋다길래 줘보고 영양제와 치료제를 먹였습니다. 4개월을 앓은 뒤 회복한 소나무를 안고 울었습니다."
93년엔 가장 좋아하는 10년생 목련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 뿌리째 파내고 다시 심어 제대로 키웠다. 지난 2월 폭설땐 150년생 소나무가 눈의 무게를 못 이겨 절반이 뚝 떨어져 나가 버렸다. 팽씨는 그날 밤을 새워 쌓인 눈을 털어내며 지켰으면서도 "돌보지 못한 내 잘못"이라며 자책했다.
캠퍼스내에 그의 손길이 가지 않은 나무가 없고 팽씨가 직접 심은 나무만도 5만여그루나 된다. 28년간 나무의 상태를 매일 기록한 '나무 일지'만도 100여권에 달한다. 75년 독학으로 조경사 2급자격증도 딴 팽씨는 요즘도 나무 관련 세미나 등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무를 배우러 다닌다.
"식목일이라고 해서 왁자하게 떠드는 것보다 길가의 한그루 나무를 훼손하지 않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팽씨가 '정식(正植ㆍ바르게 심는다)'이라는 이름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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