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보증금 8,000만원짜리 20평형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이모(42)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다음달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바꾸겠다고 통보한 것. 집주인은 "요즘 전세가 어디 있느냐"며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으로 재계약하든지 집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이씨는 할 수 없이 집을 나갈 생각으로 부동산중개소를 방문하곤 더욱 절망했다. 거의 모든 집이 월세로 나와 있고 전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한달에 집세를 100만원씩이나 낼 수 있는 샐러리맨이 어디 있겠느냐"며 "아이들 학교 때문에 집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하기 때문에 밤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봐도 헛수고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 노원 강남구 80% 월세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전세가 급격하게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구와 노원구 등 일부 지역에선 월세가 전체 임대 부동산 매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집 없는 서민들의 설움이 깊어가고 있다.
부동산 정보 서비스회사인 '부동산114(www.r114.co.kr)'가 4일 자사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임대 부동산 매물(1만9,494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3월말 현재 서울, 인천, 경기 지역 평균 월세 비중은 30.6%로 조사됐다. 이는 한 부동산 관련 회사의 인터넷 사이트에 오른 매물 자료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전세의 월세 전환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33.5%로 가장 높았으며 5대 신도시(일산, 분당, 산본, 중동, 평촌) 28.1%, 경기 26.4% 등의 순이었다. 특히 주택임대사업자가 몰려 있는 서울 강남구와 노원구의 경우 임대 부동산 매물 중 80% 이상이 월세였다.
서울, 인천, 경기 지역을 기준으로 할 때 평형별로는 20평형 이하의 월세매물 비중이 43.3%로 가장 높았고 20평형대가 32.4%, 30평형대가 25.3%, 40평형 이상이 18.7%의 순이었다.
■ 금리 낮아 월세 계속 늘 듯
이처럼 월세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한 실질금리가 사실상 연 0%로 떨어졌기 때문. 더 이상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 예치, 이자소득을 기대할 수 없는 집주인들이 최고 연 24%꼴로 계산되는 월세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월세 체납으로 인한 위험 요인 등을 감안, 2년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확보한 뒤 나머지를 월세로 바꾸는 전월세 혼합형이 인기다. 부동산 업계는 월세전환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집주인과 세입자간 임대료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개설한 임대차분쟁조정 상담실에도 월세전환 및 전세가 인상과 관련된 상담이 하루 120여건씩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계 전문가와 상담요원들이 집주인과 세입자의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23건의 조정신청건수 중 11건만이 성사된 상태"라며 "조정 불응시엔 세무서 통보 및 민사조정 신청 등을 안내하는 한편 각 자치구에도 상담실을 확충해가겠다"고 밝혔다. 문의 (02)3707_8215,6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