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도용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검정을 종료, 출판사에 결과를 통보한 3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문부과학성 장관은 담화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사는 일본인으로서의 자각과 자질 육성"을 강조했다.자기 나라 역사를 가르치는 데 있어 세계사의 흐름에서 동떨어져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주체성을 잃어서도 안된다는 상식의 확인이다. 그러나 대폭 수정에도 불구하고 주체성에 치중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 것이나 국제성에 치중했던 기존 7종의 교과서가 역사인식에서 후퇴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차 대전후 교과서에 나타난 일본의 역사인식은 1945~55년, 56~82년, 82~2001년 등 시기별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크게 요동쳐 왔다. 전후의 진보적 분위기, 자유당과 민주당이 합당해 자민당으로 출범한 이후 보수파의 정치 장악, 한중 양국 등 주변국의 입김 등이 각 시기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준 요인이었다.
크게 보아 이번 검정 결과는 일본의 역사인식이 82년 이전으로 되돌아 가는 듯한 변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그 배경으로 가장 흔히 지적되는 것이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90년대의 장기불황이다.
80년대 후반 '미일 역전'까지 운운하던 일본 경제는 거품경제 붕괴후 침체의 늪에 빠져 지금까지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침체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부르고 국민의 자신감 상실이 실물경제를 마비시키는 일본 경제의 악순환 구조는 단기적으로 해결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위기감과 무력감은 필연적으로 기득권 부정과 변화 요구로 이어진다. 최근 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나타난 무소속 시민후보의 승리나 보수파의 논객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東京)지사의 인기는 동전의 양면일 뿐이다.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도 이런 틈을 타 '역사에서 자신감을 되찾자'는 보수파의 주장이 국민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한 상징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만드는 모임'의 이데올로기를 '쇄국의 정신'이라고 규정했다. 객관적 논쟁에 질 수밖에 없으니 날로 폐쇄적으로 되고 마침내는 공격적인 정신구조를 낳는다는 진단이다.
2차 대전 직후 교과서 편찬에 관여했던 히타카 로쿠로(日高六郞) 전 도쿄대학 교수는 선진국 가운데 역사인식이 이렇게 요동친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의 역사인식이 갈수록 엄정해지고 있는 것과 크게 비교되는 역사인식 후퇴는 일본을 '세계의 외톨이'로 끌고 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과서 변화의 배경에 놓인 흐름을 우경화, 군국주의화로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사회발전 단계는 이미 그런 단순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복잡ㆍ고도화했다. 한때 유럽을 휩쓴 신보수주의의 물결과 날로 힘을 얻어가는 진보적 시민단체의 풀뿌리 운동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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