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도 전통적 관혼상제 풍습은 여전히 남아있다. 1950년대부터 사회주의 생활양식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지만 관혼상제 만큼은 유교적 가부장제 기풍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일종의 성인식인 전통 관례(冠禮)가 해방 이전에 사라진 것은 남한과 마찬가지이다.결혼
은 대개 남자 30, 31세, 여자 28, 29세에 하며, 연애와 중매가 6대 4의 비율로 이뤄진다. 이처럼 결혼이 늦는 것은 남자의 군 제대 나이가 26, 27세인데다 여성들도 "당에서 공부시켜준 데 대한 보답으로 사회에 나와 4, 5년 정도는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0년 채택된 가족법 제9조는 결혼연령을 남자 18세, 여자 17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
예식은 신부집이나 신랑집에서 열리지만 평양의 경우 경흥관이라는 예식장은 한 해 1,000여 쌍이 혼례를 치를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예복은 신랑은 양복, 신부는 분홍색 한복을 입는 게 보통이다.
주례는 "어버이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김정일 선생님의 배려 속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선언문을 읽어준다. 신혼여행은 2, 3일간 인근 명소나 도 단위 휴양소를 다녀오고, 결혼식 당일에는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참배하는 게 보통이다.
장례ㆍ제례
는 1950년대부터 사회주의적 생활양식 정착에 장애가 되는 봉건적 잔재라 해서 상당부분 통제됐다.
염(殮)하는 것까지 격식이라고 비판 받는다. 주강현 한국민족문화연구소장은 "친족들이 모여 음식을 차리는 것은 물자 낭비, 종파주의ㆍ분파주의 조성 등의 이유로 엄격히 통제됐다"며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전통 명절이 부활하면서 장례와 제례 역시 일반화했다"고 말했다.
장례는 보통 3일장으로 치러지지만 요즘에는 경제난으로 1, 2일, 심지어는 당일 시신을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장례 비용은 장례 보조금 10원과 쌀 한 말 소주(3홉짜리) 5병 등을 국가가 부담한다.
남자는 검은 완장을 차고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다는 것은 남한과 비슷하다. 장지는 지역 내 공동묘지를 이용한다. 종교 의식과 개인ㆍ문중 묘지는 허용되지 않으며 양초나 향을 사용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제사는 여전히 심한 규제를 받는다. 제사 자체를 미신으로 간주하는 데다 북한식 사회주의가 문벌위주의 가족주의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상을 모시는 소박한 형식의 차례는 존속하고 있다. 축문을 읽거나 지방을 쓰는 풍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추석이나 한식 때 성묘 열기는 대단하다. 특히 한식 때 평양 등 대도시에는 성묘객들로 교통혼잡이 생길 정도라고 한다.
주강현 소장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도 화장을 해서 묻는데 비해 북한은 여전히 화장 대신 매장을 선호하고 있다"며 "확고한 사회주의 생활양식에도 불구하고 유교적 가부장제는 여전히 인민들 사이에 잔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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