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얘기만 나오면 참으로 답답하다. 무엇이 좋은지 모른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다르니 어떻게 쉽게 판단하겠느냐." 김대중 대통령이 3월31일 퇴임 장관들과의 오찬에서 했다는 이 말에는 국가적 정책결정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99년에 구성된 민관공동조사단이 2년간이나 검토와 논의를 거쳤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찬반론만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는 새만금사업.
찬성론자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반대론자의 말을 들으면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그 중간에서 고심하고 있는 최고결정권자의 토로를 접하니 착잡한 생각이 든다.
국가적 사업의 결정과정이 훨씬 까다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 소수집단이 결정을 내린 뒤 밀어붙이면 되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게는 안 된다.
이해가 상충된 집단끼리의 갈등에 더해 사물에 대한 인식의 차까지 겹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원만히 조정해서 바른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토론과 조정의 과정을 거치지만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거나 양보하는 데 익숙치 않아 자기주장만 되풀이 하니 좀처럼 진척이 없다.
결국 공은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에게로 넘어간다. 새만금 사업도 더 이상의 논쟁과 토론은 무의미한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이제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셈이다.
여기서 대통령이 "참으로 답답하다"고 말하면 국민들이야말로 참으로 답답해진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제왕적' 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권한이 집중돼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처럼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나라도 없다.
대통령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스템을 잘 가동해서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최종결정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제도와 시스템을 통한 문제해결 노력은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대통령이 중요한 결단을 앞두고 답답함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문제해결을 위한 시스템 가동을 게을리한 업보인 측면도 없지 않다.
대통령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 관료집단의 책임도 있다. 사실 국민의 정부 들어 발생한 인재(人災)적 재앙들이 대부분 국민의 정부 개혁 철학을 관료집단이 제대로 뒷받침 하지 못해 일어났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건강보험 재정파탄으로 이어진 의약분업 추진이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의약분업문제를 전임자들처럼 기술적으로 연기하고 넘어갔더라면 김 대통령은 현재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한 상황에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총선에서 의약분업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아니었다면 의석을 몇 석 더 얻었을 터이고 그랬다면 그 이후 정치적 상황전개는 전혀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관료집단의 지휘 책임은 결국 대통령으로 귀속되는 것이며 그런 관료적 속성을 이해하는 토대 위에서 정책을 펴지 못한 것은 지혜가 짧았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대통령 개인의 통찰력이나 리더십은 중요하다. 역사에서 지도자 한 사람의 자질과 능력에 의해서 국가의 명운이 갈린 예를 많이 본다.
그러나 대통령 1인의 판단과 결정에 국가의 명운이 좌우되는 경우의 리스크는 높다. 이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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