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건은 조지 W 부시 정부 출범이후 양국관계가 악화일로를 달려오던 매우 민감한 시기에 터져 향후 처리과정과 결과가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특히 양국이 기존 현안들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강경일변도의 입장을 고수해 왔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처리는 양국관계의 최대고비이자, 중대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양국은 일단 사건에 따른 책임 문제를 놓고 치열한 외교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일 조지프 프루어 주중 대사를 중국 외교부에 보내 승무원 송환과 기체 인도 등을 요청했으나 중국측은 미군 정찰기가 영공을 침입했다고 주장, 팽팽히 맞섰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중국에 비상 착륙한 EP-3 정찰기를 미국에 인도할 것이냐 여부로 모아진다. 중국은 승무원 24명을 국제법과 관례상 우선조사후 적절한 절차에 따라 송환할 것으로 보이지만, EP-3 정찰기를 정치ㆍ 군사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
EP-3 정찰기는 중국군의 무선통신과 레이더, 전화, e-메일, 팩스 등을 감청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고 있어 미국측은 이 정찰기의 군사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정찰기가 중국의 영공에 침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은 당연히 정찰기를 인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우선 양측의 외교전은 영공 침입여부를 놓고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만약 미국의 과실이 입증될 경우 국제법상 중국은 승무원 처벌은 물론, EP-3기를 반환하지 않을 수 있다. 1968년 북한의 미국 첩보선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에서 미국은 11개월의 협상 끝에 영해침범에 대한 사과와 거액의 배상을 한 뒤 승무원만 돌려 받았던 전례가 있다.
EP-3의 중국 영공 침범 여부에 대해 데니스 블레어 미 태평양사령관은 "EP-3가 중국 영공인 하이난(海南)섬 주변 12마일에서 벗어난 70마일(112㎞) 외곽의 공해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고 강조했다.
반면 중국은 "중국 영공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사고 장소가 하이난섬에서 남쪽으로 100㎞ 떨어진 곳이라고 말해 국제적으로 공인된 중국의 영공은 아님을 시사했다. 물론 이곳이 중국이 자신의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 지역일 가능성이 높아 문제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
충돌 책임에 대해서도 양국은 완전 평행선이다. 중국은 EP-3가 갑자기 중국 전투기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중국 전투기 한대가 EP-3의 왼쪽 날개를 들이받았다고 맞서고 있다. 블레어 사령관은 "속도가 빠른 비행기가 느린 비행기에 진로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국제항공법을 보더라도 책임 소재는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대 대만 무기 판매 문제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중국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외교부가 성명에서 "EP-3가 허가 없이 하이난섬에 착륙했다"고 지적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美中충돌' 사건발생 시샤.중샤군도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군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전략 요충지이다.
미국과 중국이 주장하는 사건 발생 지역은 거리상 차이가 있지만 하이난(海南) 섬 에서 동남쪽으로 100여㎞ 떨어진 시샤(西沙), 중샤(中沙) 군도 일대이다. 이 곳은 200여개 섬이 암초, 산호초 등으로 군도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항시 떠있는 섬이 40여개나 된다.
40여개 섬은 지리적 위치가 고려되지 않은 채, 20여개 섬은 베트남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대만 등이 각각 2~3개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국경선도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중국 정부는 이 지역이 본토와 대륙붕으로 연계돼 군도 전체가 자국 영토임에는 틀림없지만 자원과 해상교통로를 공동 개발, 이용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기타 국가는 문제 발생시 개별 및 쌍무 접촉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이 지역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1974년 중-베트남간 전쟁으로 중국이 베트남의 2개섬을 점령했고, 88년 3월에는 베트남 보급선이 나포됐으며 95년 1월에는 중-필리핀간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중국 본토에서 1,500~2,000㎞ 떨어진 위도 10도 경도 115도에 위치한 난샤(南沙) 군도 역시 중국의 군사 전략 요충지이며 양보할 수 없는 곳이다.
이 지역 일대의 해상 패권 이해관계는 미국과도 관련이 깊다. 미국은 제 7함대가 92년 필리핀 수빅만 기지에서 철수한 후 싱가포르에 2003년 완공을 목표로 항공모함 진입이 가능한 부두를 건설 중이다.
미국은 1997년 대만 해협 미사일 위기 이후 중국의 군사상황에 대한 정보 수집을 강화해 왔으며 이 해협이 석유 및 해상물자의 안전수송을 확보하기 위해 요충이라는 입장이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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