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시늉만 해도 돈이 나오니까 직장 다닐 때보다 더 좋아요."(자활사업 참가자)"참가자들이 도대체 의욕이 없어요. 우리도 딜레마입니다. 일보다 정신교육부터 시켜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고용안정센터 직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취직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노동부 고용안정센터를 통해 일자리를 구해주고, 당장 취직할 수 없는 사람은 복지단체 등을 통해 근로의욕과 업무능력을 배양한다는 것.
기초생활보장제도가 4월1일로 시행 7개월째를 맞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성과없이 겉돌고 있다. 특히 자활사업 대부분을 취로사업이 차지하는가 하면 참가자들 사이에는 '버티면 돈 받을 수 있다'는 인식까지 확산되고 있다.
■ 구직활동만 매일 되풀이
서울 동대문 고용지원센터. 동사무소로부터 총 34명의 자활사업 대상자를 의뢰받았지만 직업훈련에 1명, 취로사업에 2명을 보냈을 뿐 나머지는 구직등록을 해놓고 취업면접만 반복할 뿐이다. 노원구 고용지원센터도 지난해 10월 이후 800여명을 의뢰받았으나 고용센터 알선이나 직업훈련으로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고용안정센터에 등록한 김모(47세)씨는 4개월여 동안 여전히 구직활동 중이다. 매주 한번 꼴로 구인업체를 찾아가 면접을 보는 것으로 그의 '취업의지'가 증명되기 때문에 매달 생계비를 받지만 적극적으로 면접에 응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월수입 100만원 이상을 보장하는 운전직이 나오지 않는 한 그는 취업할 생각이 없다. 사실상 김씨는 자신이 찍은 일자리가 나올 때까지 급여를 계속해 받는 일종의 부정수급자인 셈이다.
노원구 고용지원센터 이비연 사회복지사는 "고졸 이상의 20~30대 젊은 층을 요구하는 업체가 많아 참가자들이 취업교육을 받아도 학력,나이 제한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며 "3D업종의 경우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거부해 취업률이 매우 낮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취로사업만 비대해졌다
당장 취직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생계비를 받는 대신 복지단체 등에서 실시하는 세탁, 봉제 등 자활사업에 참가하거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가로 정비, 벽보 정리 등 취로형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취로는 과거의 공공근로사업과 같은 것으로 실제 내용은 자활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복지부에 따르면 취로형 비율이 10대 1로 압도적으로 많은 실정이다.
서울 은평구 감리회사회복지관의 경우 지자체가 의뢰한 24명 중 세탁일이나 파출부일에 참가한 사람은 고작 2~3명. 송파구 천주교까리따스 수녀회가 실시하는 산후조리ㆍ파출업 사업 역시 대상자 16명 중 참여자는 5명에 불과하다. 수녀회 김현진 사회복지사는 "지자체가 의뢰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자활의지가 없다"며 "이들은 차라리 자신들이 음성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급여도 낫고 마음도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하계1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는 "자활 대상자의 70%가 취로사업에 투입되고 있다"며 "취로사업을 통해 보다 발전된 자활사업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지만 현실성이 적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귀족실업자들도 생겼다
이 바람에 3D 업종을 비롯한 많은 중소기업들이 실업자가 100만명을 넘는 실업대란 속에서도 구인난을 겪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청소대행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51)씨는 "취업알선센터에서 5명 가량 소개받았지만 월급에 비해 근무여건이 나쁘다고 모두 퇴짜를 맞았다"며 "복지제도가 귀족실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활사업의 경우 부정수급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에서 자활사업에 참가하는 이모(56세)씨의 경우 지역 자활근로 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매달 6만여원의 생계보조비를 받고 있으나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2개월째 나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진짜 불참 이유는 노점에서 떡볶이를 팔고 있기 때문. B씨가 속한 동사무소의 김모 복지사는 최근에야 이 사실을 알고 수급중지 경고를 보내기도 했다.
김경철기자
kcki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복지전문가 "복지 부족"- 경제전문가"복지 과다"
기초생활보장제 시행에 따른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이를 둘러싼 복지 전문가들과 경제 전문가들 간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복지 전문가들은 복지예산을 확대, 급여를 더 올리고 자활사업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의 부족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하고 이 바람에 생산적 복지의 성과가 적다는 것이다.
한국빈곤상담소 류정순 소장은 "자활대상자들의 자활 참가율이 낮고, 참가해도 취로형에 몰리는 것은 기존에 하던 음성적 일자리가 소득도 상대적으로 많고 편하기 때문"이라며 급여인상을 통해 자활참가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곤 연구원은 "취로형이 많은 것은 시행 초기 불가피한 현상이며, 자활의 성과가 나타나면 취업 등 보다 높은 단계의 자활을 유도할 수 있다"며 "부정수급자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제전문가들은 한시적이며 적정수준의 급여지급, 소득공제 확대를 통한 근로유인 제공 등 제도의 전면적인 수정이 없는 한 생산적 복지는 시혜적 복지의 확대재생산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즉 복지의 과다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연세대 윤건영(경제학) 교수는 "60만원을 벌든, 50만원을 벌든 무한정 최저생계비(96만원)와의 차액을 보충해줄 경우 당연히 자기 소득을 낮게 신고하게 되고 열심히 일할 사람도 적게 된다"며 "급여 수급기간을 제한하고 소득공제를 강화, 자신이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낮게 산정돼 정부가 지급하는 급여가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 박사는 "저소득층 개개인들의 절대적 복지수혜는 적을지 몰라도 우리 경제여건을 감안하면 현재 복지수준은 분명 과다하며, 자칫 복지병으로 전염돼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재정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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