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 대규모의 기업 도산에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기업 도산은 금융에 부실채권을 떠넘겨 금융을 부실화하고 금융부실은 다시 기업 도산을 유발하는 부실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어디서 어떻게 끊느냐 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라 할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응급조치와 근치(根治)대책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응급조치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털어서 금융신용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더라도 계속 기업 도산이 이어진다면 위기상황은 계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근치대책은 기업 도산 자체를 단절시키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철저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응급조치와 근치대책을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것이며 지금의 경기침체는 이러한 치유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경기침체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경제의 기본 틀이라 할 수 있는 거시경제지표를 보면 지난해의 경우 경제성장 8.8%, 물가 2.5%, 경상수지 110억 달러 흑자 등으로 매우 좋은 편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가처분 실질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체감경기인데 이것이 매우 나쁜 것은 국민 1인당 500만원 상당의 손실에 해당하는 연중의 주가하락과 구조조정에 따르는 실업의 고통 때문이며 이것들을 유발한 원인은 금융부실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붕괴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에는 실물경기는 내려앉고 체감경기는 호전되어 이들 두 경기지표가 서로 수렴하게 될 것이다.
4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금융부실문제는 상반기 중에 가닥을 잡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체감경기는 상반기 중에 풀리기 시작할 것이다.
실제로 전경련 등 여러 조사기관들의 경기실사 결과 체감경기가 3월 경부터 크게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경제성장률로 대표되는 실물경기는 지난해 연말부터 꺾이기 시작하여 그 수축조정이 지금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은 기업의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 회복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앞으로 경기대책은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할 것인가. 우선 올해의 경제성장이 4% 수준으로 크게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것은 국내외 환경에 비추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성장률을 더 높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올해는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그 대신 금융신용 회복과 경제구조조정을 마무리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적자재정으로 재정지출을 늘려 소비와 투자를 자극함으로서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통적 의미의 경기부양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은 자금수요를 불러 일으켜 금리를 올리고 국제수지의 악화와 인플레를 유발하기 때문에 구조조정과 상충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경기대책은 금융 쪽에서 하는 것이다. 즉 공적자금을 조속히 효율적으로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신용을 회복하는 일,
중앙은행이 자금을 여유있게 공급하여 저금리기조를 유지하고 자금순환을 정상화하는 일, 그리고 회사채나 직접금융 등의 자금소통에 막힌 곳이 있으면 이것을 뚫어서 기업의 흑자 도산을 막아 주는 일등이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책의 틀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짜여져 있다. 한국은행은 자금을 충분히 풀어서 사상 최저금리를 유지시키고 있으며 금융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공적자금투입도 상반기 중에 집중적으로 집행될 예정으로 있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별도의 경기부양책은 필요치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여 대우문제를 조속히 마무리짓고 새로 나오는 대기업의 잠재적 부실문제들을 수습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박 승ㆍ중앙대 명예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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