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구계에 이례적인 '세계 최초' 논쟁이 일고 있다. 발단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28일 '세계 최초의 종이 같은 스피커'를 개발했다는 발표였다.PVDF라는 플라스틱으로 스피커를 만들어 종이처럼 둘둘 말거나 벽, 천장에 붙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보도가 나간 다음날 한 서울대 교수가 과학 담당 기자들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PVDF를 이용한 스피커, 각종 센서가 미국에서 상용화한 지 오래이고 자신은 스피커 성능을 높이기 위해 수년째 연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세계 최초'가 아닌 것을 왜 최초라 주장하느냐는 거다.
확인해 보니 PVDF를 이용한 센서가 영종도 신공항 주차장에 납품됐다. 디즈니랜드는 풍선 속에 이 스피커를 넣어 썼다.
이에 대해 KIST 연구팀은 "PVDF를 가공하는 표면처리 기술이 세계 최초라는 뜻이지, 종이식 스피커가 세계 최초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일을 수습했다.
사실 KIST 연구팀의 표면처리 기술은 자랑할 만한 원천 기술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우수한 기술이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일리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과학기술계에서 '세계 최초'는 너무 자주 남발되고 있다. 습관처럼 붙는 '세계 최초'는 때로 연구자들 사이에 신경전을 불러 일으키고, 간혹 증권시장에서 제약회사나 벤처회사 등의 주가를 띄우는 음모에 악용되기도 한다.
한 교수는 "모든 박사 학위 논문은 세계 최초 아닙니까?"라고 비꼬아 말한 적이 있다.
노벨 과학상을 타지 못한 우리의 콤플렉스, 세계 과학 연구의 정상에 서 보지 못한 우리의 조급함이 '세계 최초'라는 수사(修辭)만 요란하게 부풀리고 있는 게 아닌지.
김희원 생활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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