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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명예회장 '周永 형님을 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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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영명예회장 '周永 형님을 哭한다'

입력
2001.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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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은 가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곁에서 뵐 수 없는 분이 되셨습니다.우리가 태어난 곳은 속칭 감자 바위로 상징되는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210번지, 태백산맥 정상 근처의 산 높고 골 깊은 벽지 마을이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물 맑고 오염 안된 대자연이 마음대로 숨쉬던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한없는 꿈을 꾸면서 성장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선조 때부터 이어온 가난한 가문의 6남중 장남으로서 우리 7남매를 두셨지만 아버님은 농사일, 어머님은 양잠 등 길쌈을 하시며 저희들을 꿋꿋하게 성장시켰습니다.

형님은 장남으로서 부모님 곁에 계셔야 하는 까닭으로 송전공립소학교를 마친 후 불타는 향학열을 억제해야 했지만 동생들은 대부분 대학까지 마치게 했습니다.

형님은 건장하시고 체격도 후리후리하시어 참으로 사나이다운 분이셨습니다. 형님은 그 기민한 재능과 기개로 때와 기회만 제대로 만났으면 치국평천하하실 분이었습니다.

형님, 봄이면 진달래, 함박꽃, 복숭아, 살구꽃이 만발하여 무아경을 이루던 우리 고향 아산리, 험준하면서도 유연하게 내려 뻗은 산세와 그 산야를 흘러 동해로 빠져나가는 풍경은 이 골에서 의당 큰 인물이 나올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동네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습니다. 그 인물이 바로 형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형님은 가끔 "저 산 넘어가면 희망이 있다고 하기에 허둥거리며 넘어가 봤더니 사람들은 또 앞산을 넘어가면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더라"는 독일시인 칼 부세의 시를 즐겨 외우셨습니다.

그래서 형님은 아버님의 소 판돈 몇 십원을 갖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거기서 형님은 빈손으로 생활 터전을 이룩하고 오늘의 현대와 한국 경제의 기틀을 만드는 대 역사를 이룩하셨습니다.

형님은 그렇게도 희구하고 몸소 앞장서서 이룩하려 했던 조국 통일의 그날을 못 보시고 영영 가셨습니다.

형님께서 인인신고(忍忍辛苦)하면서 교육시키고 성장시켜 놓은 저희 동생들은 형님의 동생들답게 검소, 근면, 효율을 신조로 국가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형님, 모쪼록 가시는 길이 평탄하시고 편안한 길이 되시기를 저희들은 두 손 모아 빌고 있습니다.

"산천은 의구한테 인걸은 간데 없네"라고 한 옛사람들의 외침이 새삼스럽게 여겨집니다.

형님. 편안히 가십시오. 형님은 항상 저희들 곁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형님에게 먼저 알리겠습니다. 형님이 가시는 새 세상에서 형님이 이루고자 했던 많은 사업들을 이룩하실 수 있으시기를 바라면서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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