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기준(李基俊) 총장이 28일 도쿄대(東京大) 졸업식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축사를 했다.그가 축사의 서두에서 말했듯, 한국의 대학총장이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의 산실에서 축하의 말을 한 것은 정말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일이었다. 초청한 측도 흔쾌히 응한 측도, 모두 용기 있는 결심을 해 주었다.
하스미 시게히코(蓮實重彦) 도쿄대 총장이 지난해 9월 김대중 대통령 방일 때 공식초청 의사를 밝혀 이번 일이 성사된 사실에 유의하면서, 하스미 총장의 열린 마음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가 98년 졸업식 때 도쿄대 출신 고급 관료들의 금융비리 사건을 언급하면서 '지식은 있으나 지성이 없는' 엘리트들의 비도덕성을 통박한 데 공감한 바 있어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이 총장은 우회적으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비판한 뒤 상호이해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역사는 잊혀질 수는 있어도 지워질 수는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답게 우리 국민의 정서를 적절히 표현한 말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해 하스미 총장은 "역사왜곡으로 작은 자기만족은 얻을지 몰라도 미래에 대한 용기는 결코 얻을 수 없다"고 응답했다.
80년대 교과서 파동으로 달라진 역사교과서 용어와 기술을 옛날로 되돌리려는 우익세력에 대한 용기 있는 비판이 아닐 수 없다.
전후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원만했던 때는 없었다는 것이 두 나라 국민의 공통된 인식이다. 현 정권 등장이후 단계적인 문화시장 개방으로 두 나라 국민은 거의 동시에 서로의 문화에 접하게 되었고, 국민간의 교류와 접촉은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다.
사상 유례없는 월드컵 공동개최도 1년여 밖에 남지않아 교류와 협력은 어느 때보다 증진될 것이다.
근래 불거진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만 없다면 모범적인 우호관계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때에 두 나라 지성의 대표가 한 자리에 선 사실 자체가 큰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같은 문제에 같은 생각을 말한 것은 문제해결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이미 두 대학 공동학위제를 시행키로 합의한 바 있고, 상대국에 대한 연구와 학술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서울대의 일본학연구소와 도쿄대의 한국학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학술행사가 꿈이 아닌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도 같은 자리에 상대를 초청하는 답례가 부담이 되지 않는 새 시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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