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ㆍ차관급 14명을 교체한 '3?6 개각'은 국정쇄신보다 정국운영이 더욱 고려된 인상을 준다. 개각의 본래의 목적은 전문적이며 추진력 있고 참신한 인물을 기용함으로써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국정을 쇄신하고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하지만 이번 개각은 의료보험 재정의 파탄을 가져온 의약분업에 대한 문책성 인사, 민주당으로 옮아가는 수고를 해준 정치인에 대한 보상성 인사, 자민련과의 공동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성 인사, `3당 연합'을 추진하기 위한 인사, 대북 첩보사업의 수장이 대북 포용정책을 집행하는 모순을 피하기 위한 인사 등 정치적 목적의 배분으로 보여진다.
정치적 개각에 개혁을 지속하기 위해선 다수 여당에 의한 정국안정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3여를 통한 정국주도 내지는 앞으로의 3당 합당을 목표로 이루어진 개각의 문제점은 또다시 닥칠 수 있는 국정운영의 난맥상이다.
그래서 새 내각이 잘해주기를 기대하지만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도 된다. 지금은 사실상 비상시국이나 다름없는 현실이지 않은가.
정권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대권주자들의 행보가 빨라지고, 회복된다던 경제는 일본식 장기불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고, 한국외교의 근간인 한미동맹 관계가 흔들리고, 잘못된 의약분업에 의료보험 재정은 파탄이 나고, 21세기 우등생을 만들어내는 교육이 아니라 하향 평준화된 열등생을 대량 복제해 내는 교육제도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런데 의약분업의 정책결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의료보험을 관장하는 장관이 되었고, 자녀교육 때문에 이민 열풍이 불고 있는 판국에 교육부 수장을 맡았던 분이 다시 당의 정책위의장에 임명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고에 기초한 정책의 전환이 가능할 것인가 의심스럽다.
그나마 미국의 부시 행정부 이후의 대북정책 변화 가능성을 오판하고 ABM 조약 지지라는 대형 외교사고를 일으킨 외교팀을 교체한 것은 다행이다.
새로이 등장한 부시 행정부와 우리의 새로운 외교렙횐?팀이 한미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였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첫째, 대통령은 새로운 국정운영 시스템을 짜야 한다. 대통령제 하에서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비전만을 제시하고 장관들에게 권한을 함께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 모든 일을 챙길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장관이 청와대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이 입안될 수 없다. 대통령이 하는 일은 장관이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다.
능력을 믿지 못할 장관이라면 애초에 일을 맡기지 말아야 했다. 정치적 연합을 위하여 장관직을 나누어주고 믿을 수 없으니 내가 챙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자가당착이다.
둘째, 대통령은 현재의 위기를 가져온 측근정치를 탈피하여 진지하게 국민과 대화하고 야당과 논의해야 한다.
나라의 비전이 보이지 않아 이민을 떠나는 국민들의 요구를 경청해야 하고 야당이 반발하는 이유를 겸허하게 들어보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가장 오래 야당을 해보지 않았는가. 야당 시절 대통령이 지시만 하는 국무회의를 비난하지 않았는가.
속죄瑛막?몇몇 인물을 교체하고 나면 민심이 수습되고 국정이 쇄신되기를 기대하는 그러한 개각을 통렬하게 비난하지 않았는가.
셋째, 개각이 개악이 되지 않기 위하여 대통령이 남은 기간에 정국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후일에 존경받는 대통령도 되는 일도, 정국의 안정을 확보하는 일도, 강력한 정부를 만드는 일도, 정권을 재창출하는 일도, 민생을 책임지는 훌륭한 국정운영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인영·한림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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