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한 장의 낡은 봉투가 있다. 겉봉에는 '만원사례'라는 굵은 글씨에 '극단 山河''베켓트'라는 목도장 글씨가 아직도 선명하게 찍혀있다. 봉투에는 십원짜리 지폐 다섯장이 다리미질이라도 한 듯 빳빳하게 들어있다.연극계에는 관객이 많이 들면 '만원사례'봉투를 단원들에게 나눠주는 풍속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만원사례'봉투를 받아보기란 50년 연극 인생에서 두어번 정도였으니 그것이 그 얼마나 귀하고 고맙고 값진 유품인가는 상상을 초월하리라.
그래서 지금까지도 곱다랗게 간직하며 가끔 들여다보곤 한다. 그곳엔 나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1966년 9월5일부터 5일간 내가 주관하던 극단 '산하'는 명동에 자리했던 국립극장에서 한편의 연극을 올린 적이 있다.
장 아누이 작, 한상철 번역, 표재순 연출의 '베켓트'였다. 대부분 극단들이 700석 남짓한 객석에 고작 50~60명의 관객을 앞에 놓고 별 수 없이 굿판을 벌이던 시절이었다.
그럴 때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10회 공연에 약 6,500명의 관객이 몰렸고 200원 하던 관람권이 매회 매진되었으니 만원사례 봉투를 안낼 수가 없었다.
TV광고를 낸 것도 아니고 신문에 유료 광고를 낼 처지도 아니었고 스타가 있는 것도 아닌 그 연극에 왜 관객이 몰렸는지 판단이 안 섰다. 그것은 바람이었겠지. 그냥 한바탕 불고 간 돌개바람이었을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했다. 좋은 연극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더 짙게 엄습해왔다. 세계적인 명작이라고 해서 손님이 든 것은 아니다.
TV나 영화계의 스타가 등장한다고 해서 만원사례가 나간다는 보장도 없다. 그 연극에 쏟아넣은 정성이 문제일 게다.
지금도 날마다 어디선가 다양한 연극이 올려지고 있다. 그러나 만나는 후배 연극인들은 울상이다. 어쩌다가 상업주의 연극이나 대형 뮤지컬에는 손님이 몰리지만 소극장에는 관객이 없다며 한숨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니 요즘 세상에 만원사례 봉투를 구경할 수도 없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의상과 귀청을 찢는 소음과 조잡한 움직임만 있을 뿐 연극이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돈벌이에 대한 잔꾀뿐이니 언제 '만원사례'가 나오겠는가. 가난했지만 봉투 한 장으로 담아내어 나눠가졌던 그 시절이 정겹다. 더 차지하려는 욕심보다 정을 나눠가졌던 만원사례 봉투가 예쁜 자식놈 같아서 나는 행복하다.
차범석·극작가ㆍ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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