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무디스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춘데 이어 최근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일본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또 낮췄다.아직은 일본의 10년짜리 국채 금리가 연 1.4% 이하여서 어느 나라 국채보다 여전히 높은 신용도를 나타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냉전체제가 바뀌고 디지털경제가 등장하는 변화 속에서 일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두고 이제는 일본이 후진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렵자 본래부터 높던 일본 국민의 저축열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일본의 개인 금융자산 규모만도 1,400조엔에 달하고 있다.
특히 2차대전을 겪은 세대인 70세 이상 세대주의 지난해 평균저축은 전년보다 185엔이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의 높은 저축률이 일본 국민의 근검절약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국가는 부강해도 국민은 여전히 가난하다'는 악명처럼 일본은 그 경제력에 비해 사회복지기반은 매우 부실하다.
그러니 미래가 불안한 국민들이 그저 저축에 매달리고 소비성향은 위축되어 경기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후발주자의 이익이 무엇인가, 바로 이런 일본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외 일부에서는 일본의 경기침체가 종신고용과 연공서열 등 일본의 경직된 고용관행 탓이라고 지적한다.
인원정리가 자유롭지 못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동일 시간대에 동일 장소에서 동일 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노동자 단결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하였다.
동일한 출퇴근시간에 맞춰 같은 직장에서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그 비슷한 노동여건으로 인하여 강력한 계급연대가 가능하다는 강조였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산업화 초기 노동자들의 그러한 존재형태가 그들을 계급적으로 단결시키는 힘일 수는 있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자들의 바람직한 존재 형태일 수는 없을 것이다.
분업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은 비참한 노동자상은 챨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톱니바퀴를 따라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평생직장이라는 말 대신에 평생고용이라는 말이 유행이어서 예전처럼 한 우물을 파는 식의 직장생활을 큰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하기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개성과 취향이 다변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한가지 노동, 한가지 직장에만 평생을 매달리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모습일 수는 없겠다.
원하는 바에 따라 직업과 직장을 바꾸고 언제라도 인생의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회,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 '노동 유연화의 사회'가 제대로만 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분업에 찌든 '모던 타임스' 속의 노동자를 온전한 인간으로 복원시켜주는 지름길일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몇 가지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먼저 원하는 직업에 필요한 재교육이 언제라도 가능하도록 사회교육시스템이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교육기간 동안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 사회안전망의 기초 역시 마련되어야 한다.
정부는 2월 말 4대개혁의 틀이 마련되었다면서 앞으로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구조조정이 상시화하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런 사회기반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시화하는 구조조정의 내용이 무엇일 수 있을까. 이런 염려가 무리도 아닌 것이 2월 실업자 수가 드디어 100만명을 넘어섰고 취업자도 그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더디가도 개혁의 기반을 놓고 가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김윤자ㆍ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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