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박지원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장관이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에 발탁, 김대중 대통령의 지근 거리로 다시 돌아왔다. 1999년 5월 청와대 공보수석에서 문광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지 22개월만의 청와대 재입성이다.
한빛은행 사건 연루의혹과 관련된 야당의 공세로 장관직을 떠난 지 6개월만의 공직 재취임 이기도하다. 그만큼 김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다는 얘기다. 박 수석 자신이 '야인(野人)' 시절 "곁에 두고 쓰실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 그대로 들어 맞았다.
공직을 떠났던 6개월 동안에도 각종 개혁정책에 대한 여론수렴 및 대안 보고, 동교동계 내부갈등 조정 등으로 김 대통령과 '핫 라인'을 유지해 왔다.
국정원장, 비서실장, 정무수석 등 어지러이 하마평에 오르다 정책기획수석에 낙착됐다. 박 수석은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어서 정책기획ㆍ조정, 여권 인력 활용 등에서 강력한 정부를 뒷받침하는 체질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비난 공세 등에 어떻게 대응할 지도 관심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한우물' 임동원 ▼
임동원(林東源) 신임 통일부장관은 1999년 5월부터 7개월간 통일장관직을 지낸 뒤 다시 통일정책 수장에 오르는 진기록을 갖게됐다. 이홍구(李洪九, 88.2~90.3, 93.4~94.12)장관에 이어 2차례 통일부장관을 오른 인물이 됐고, 김 덕(金 悳) 장관에 이어 정보책임자(안기부장 포함)을 지낸 뒤 통일부 장관으로 옮긴 인사가 됐다.
하지만 임 장관의 경우 이 같은 기록보다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외교안보수석,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통일부장관으로 자리를 바꾸면서 줄곧 대북정책을 책임진다는점이 돋보인다. 물론 이 같은 경력은 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99년 12월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 국정원법을 들춰본 뒤 취임소감을 밝힐 만큼 국정원의 정도(正道) 운영을 강조했던 임 장관은 국정원에 있으면서 국내정치 문제보다는 대북정책에 진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등 남북현안을 원만히 풀어냈지만 정보책임자로서 어울리지 않게 대북협상 전면에 나선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같은 평가가 개각에 반영됐고, 대북정책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는게 정설이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우회한' 장재식 ▼
장재식(張在植) 산자부장관은 친정인 민주당이 아니라 자민련 몫으로 장관 자리에 올랐다. 3선인 장 장관은 국세청차장 등을 거친 여당의 대표적 경제통이어서 국민의 정부 출범 후 개각이 있을 때마다 줄곧 하마평에 올랐다.
"장 장관이 먼 길로 우회해 소원을 이루었다"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이기도 한 장 장관은 지난 1월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민주당을 탈당, 자민련에 입당했다. 지난 연말 배기선(裵基善) 의원 등 예결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 3명이 자민련에 먼저 입당한 데 이어 장 장관이 추가로 이적했다.
야당은 이를 '의원 꿔주기'라고 비판했지만 장 장관의 입각은 사실상 굳어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이 각별하지만 JP와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최근에는 자민련 의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16년만에 골프채를 다시 잡는 성의를 보였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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