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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빛과 그늘] 도쿄대졸업 첫 한국인 尙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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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빛과 그늘] 도쿄대졸업 첫 한국인 尙灝

입력
2001.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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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尙灝ㆍ1879~?)는 한국인 최초의 일본 대학 졸업생이다. 1906년 여름 그는 동경제국대학 공과대학 조선과(造船科)를 졸업해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대학 졸업자가 되었다.동경대학 도서관에는 그의 졸업 논문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일본어가 아니라 영어로 쓰여 있고, 그만하면 훌륭한 영어다.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을 강제로 개국시켰다. 나라 문을 굳게 잠그고 버티던 쇄국의 나라 조선이 문을 연 지 꼭 30년 만에 최초의 일본 대학 졸업생이 나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사실은 그보다 15년 전에 미국에서는 최초의 조선 유학생이 대학을 졸업한 적이 있다. 그 후 몇 명이 더 대학을 나온 다음에야 일본에서는 최초의 조선 학생이 대학을 졸업했던 것이다.

동경대학에서 최초의 조선 학생이 졸업한 1906년까지 전 세계에서 대학을 졸업한 조선인은 10명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동경제국대학은 이미 1877년에 근대식 대학으로 문을 열어 이 때까지 이미 수천명의 졸업생을 내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다.

원래 상호는 뛰어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16세인 1894년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한 그는 4년 뒤인 1898년 9월 졸업과 함께 모교 영어 부교사가 되었다.

또 졸업 전 해에는 시험을 잘 보아 은시계를 받은 일도 있다. 같은 해 1898년 11월 그는 도쿄에 건너가 공수(工手)학교와 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동경대에 진학했고, 1906년 졸업한 것이다.

1906년 동경제대 재학 중에 첫 대한유학생회 회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대한제국 농상공부의 참서관, 서기관, 경성박람회 고문을 거쳐 1907년 9월에는 농상공부 공무국장으로 임명되었고, 곧 도량형 사무국장을 겸하게 된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대단히 출세한 것도 같지만 여기에 대한제국의 비극(그늘)이 있다. 이렇게 일본에서 공부한 상호의 배 만드는 기술이 그의 조국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학문이었다.

군함을 지을 힘도, 상선을 만들 기회도 전혀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모처럼 과학기술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있어도 그 인재를 쓸 사회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박성래<한국외국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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