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생물산업 육성 의지와 유전자원(遺傳資源)의 중요성이 부상하면서 유전자원 은행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프로젝트가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다.생명공학연구원 정혁 박사가 단장으로 이끄는 '자생식물 이용기술 개발 사업단'(이하 자생식물사업단)은 26일 국내 자생식물 표준추출물은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 자생식물 120종 200개 시료를 제조, 필요한 연구자들에게 2,500~5,000원의 실비를 받고 200㎎씩 분양하는 서비스다.
2010년 100조원을 넘을 생명공학제품 시장의 30~40%가 식물성분으로 추정될 만큼 식물자원에 대한 수요는 많다. 그러나 개별 연구자들이 일일이 채취, 분류, 추출하는 과정이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소요하기 때문에 추출물은행에서 수집, 동정(종을 분류하는 것), 서식정보 데이터베이스화 등을 표준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업단은 추출물 상태가 아닌 씨앗을 보관하는 종자은행도 따로 설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기존의 종자은행과 새로 설립되는 종자은행이 없지 않다. 농업과학기술원은 식량ㆍ특용작물 중심의 종자은행을 운영해 원예연구소, 작물시험장, 지자체 농업기술원 등에 육종연구용 종자를 분양하고 있다.
산림청은 2001년 시공에 착수하는 산림생물표본관 내 자생식물자원 보존과 공급을 위한 종자은행을 설치할 예정이다. 일단 농업과학기술원의 종자은행은 작물 중심이라 쳐도 산림청 종자은행은 상당부분 자생식물사업단의 종자은행과 역할이 겹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역시 동ㆍ식물, 미생물을 포괄하는 생물자원을 범국가 차원에서 수집, 제공, 보호하는 '국립생물자원보존관'(가칭)을 설립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올해 예산 확보에 실패해 사업계획을 보류 중이다.
이에 대해 정혁 박사는 "종자에 대한 특성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다른 종자은행의 경우 자원으로서 활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1,777종 14만 6,000여점의 종자를 보유한 농업과학기술원 종자은행에는 17명의 연구자가 관리하는데 종자를 보충수집하고 특성분석을 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이에 반해 10년간 1,0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을 자생식물사업단은 40여명의 분류학자와 15명의 운영인력을 동원, 연구의 표준 시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유전자원 관리ㆍ운영의 무방비국이나 마찬가지다. 동ㆍ식물 미생물을 포괄하는 유전자원센터, 속칭 '자연사 박물관'은 국내에 한 곳도 없다.
김창렬 자생식물단체연합회 회장은 "국내 수목원, 식물원 등은 1800년대부터 조성돼 온 선진국에 비하면 '조경용 공원'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자생식물사업단은 우리나라 분류학자들을 모아 종 분류, 분류번호, 표준화한 이름을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출발이 늦은 만큼 부처간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혁 박사는 "종자은행이 여러 개 있는 것은 상관없지만 정보가 교환되고 전문인력이 관리하는 범부처적 관리체제를 갖출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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