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우리금융지주회사'의 회장(CEO) 선정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 금융'의 상징적 차원에서 '40대 국제금융에 정통한 CEO'을 찾던 있던 정부는 외국계은행 고위간부인 H씨에게 내심 호감을 갖고 있었다.그러나 공적자금이 들어간 우리금융지주회사의 CEO 연봉으로 책정된 액수로는 H씨가 외국계은행에서 받던 급여의 절반도 줄 수 없었고, 결국 그에게 회장직을 정식으로 얘기조차 꺼내지 못했다.
'돈' 때문에 유능한 경영진 영입이 무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환란직후인 1998년초 정부는 외국계은행 아시아지역 책임자였던 L씨를 국책은행장으로 영입키 위해 무척 공을 들였지만, 연봉문제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CEO의 연봉수준은 과연 어느 수준이길래 유능한 경영자 영입시도마다 번번히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일까.
지난 21일 헤드헌팅업체인 탑 경영컨설팅㈜ 주최로 열린 '21세기 경영자포럼'에서 인사ㆍ조직전문업체인 타워스 페린의 박광서 한국사장은 강연을 통해 우리나라 CEO가 얼마나 '박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통계로 보여줬다.
타워스 페린 조사에 따르면 국내기업(외국계기업 기준)의 CEO와 생산직 사원의 연봉격차는 약 11배. 그러나 같은 아시아권이라도 홍콩과 싱가포르는 연봉격차가 무려 38배, 36배에 달하며 중국조차 상하이(上海) 지역기업 CEO는 직원보다 30배나 많은 돈을 받고 있다.
미국의 급여격차는 32배, 영국 25배, 캐나다 21배, 대만도 우리보다 높은 15배 수준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연봉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 '상후하박(上厚下薄)'이 급여체계의 세계적 추세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낡은 '하후상박(下厚上薄)'구조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 격차도 문제지만 CEO 연봉의 절대수준도 세계수준에 턱없이 미달하고 있다. 미국 CEO의 평균연봉은 140만달러(18억2,000만원).
우리나라는 외국계 기업 CEO가 19만달러(2억5,000만원), 순수 국내기업 CEO는 11만달러(1억4,000만원)에 불과하다. 홍콩과 싱가포르 CEO는 각각 64만달러와 62만달러, 대만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18만달러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국제적 조류와 동떨어진 우리나라의 연봉체계는 CEO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지위가 높을수록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더많은 돈을 받아야한다'는 것이 선진국 정서라면, '지위도 높은데 돈까지 많이 받는다는 말이냐'는 그릇된 형평주의가 한국적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러나 IMF체제이후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CEO의 중요성은 이미 입증됐다. CEO라고 무조건 많은 연봉을 보장할 이유는 없지만, 유능한 CEO라면 파격적 연봉도 마다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박광서 사장은 "연봉을 기본급 중심으로 책정하지 말고, 장단기 성과금과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 등 실적과 연동시켜 경영성과에 따라 최대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며 "기업경영이 건실해지려면 유능한 경영자부터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CEO 급여체계에 대한 획기적 제도개선과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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