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교 전열이 갈수록 지리멸렬하는 인상이다. 급변하는 외교안보 환경에 비상한 대응자세를 갖추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고 있다.한미 정상회담의 참담한 실패를 교훈 삼기는 커녕, 국내의 비판과 우려에 맞서 좌충우돌하는 모습만 두드러진다. 이대로는 국가적 위기를 부추길 것이 크게 걱정된다.
문제의 근본은 미국의 부시 행정부 등장에 따른 외교 안보적 위기상황을 진정한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
또 위기 타개를 위해 그야말로 신명을 바치는 정책 담당자를 보기 어려운 현실이 문제다. 이 개탄할 상황부터 해결해야만, 국가적 활로 개척에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부시 행정부의 냉전적 강경외교를 정권 초기의 미숙함과 혼란 탓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미국 외교의 연속성과 우방관계 등을 막연히 믿었다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통령이 뺨을 맞는' 수모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상회담의 성패여부를 놓고 우물 안 논쟁을 하는 사이, 바깥에서는 미국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한국 대통령을 상대로 우방과 적 모두에게 본때를 보였다고 지적했음을 알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국가미사일방어(NMD)계획을 무기로 유럽과 아시아 우방을 단속하고, 특히 한반도 화해무드를 동결시켰다.
이어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와 인권문제를 고리로 중국을 몰아붙였다. 또 안보기관도 아닌 연방수사국(FBI) 간첩사건을 빌미로 러시아 외교관을 대거 추방해 냉전시대를 연상케 하는 적대적 구도를 조성했다. 이 모든 것이 준비된 포석으로 풀이된다.
부시 행정부에 포진한 냉전시대 인물들은 일찍부터 오로지 미국적 가치와 국익을 위한 '힘의 외교'를 표방했다.
유엔 등 국제기구와 협정,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조차 국익에 우선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이들이 이미 이를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운 궤도 수정과 호의 따위에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미국과 우리의 국익을 혼동하지 않는 냉철한 주체성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림 없이 사회 전체가 우리의 국익을 지키는 길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거국적 총력 외교 자세가 긴요한 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