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에 대한 조문단 파견은 일단 정 전 명예회장과 현대측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다.하지만 남북 사이에 사상 처음인 조문단 파견은 남북관계 전반과 김 위원장의 서울답방 등을 고려한 깊은 수읽기에서 나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김 위원장은 자신과 3차례 만나고 김일성(金日成) 주석과도 대좌한 고인에 대해 예의를 표해야 할 입장이다. 더욱이 고인이 3억 달러 이상의 현찰을 안겨준 사업 파트너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예우가 당연하다.
이에 더해 북한은 남한 사회 전체가 애도하는 분위기에 동참할 경우 김 위원장의 '인덕 정치' 스타일을 과시할 수 있고, 1994년 김 주석 사망 당시 남한의 조문파동을 무색케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볼수있다. 남한보다 '한수 위' 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행보라는 얘기다.
또 조문단 파견은 현재의 남북 화해협력 기조와 남북 경협을 유지하고 싶다는 시그널로도 해석된다.
이는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위한 분위기 조성과도 맞닿아 있다. 북측이 23일 연락관접촉을 통해 김 위원장의 조화 크기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조화와 비슷하게 맞추려 했다는 점도 남측 분위기를 감안한 조치다.
하지만 북측은 조문단을 남북대화의 창구로 활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조문단 파견 방침을 알리면서 당국간 연락관접촉을 굳이 피하고 남북 적십자 연락관을 이용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해 추석 직전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비서와 함께 서울에 온 박재경 인민군 대장이 송이만을 전달하고 남측 군 당국자와의 접촉을 피한 선례가 연상된다. 또 조문단의 서울 체류 시간이 불과 6시간이라는 점도 당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관측통들은 북측이 당국과의 대화를 원했다면 송호경(宋浩景)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대신 책임자급인 김용순 비서를 단장으로 보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한편 조문단 파견 자체가 남북관계의 청신호라고 판단하는 정부는 조문단의 서울 활동을 현대측에 맡기는 한편 당국자와의 대화를 굳이 요청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북측 특별기 운항 허가, 북측 인사 안전보장 등 소관 사항에만 간여할 예정이다.
하지만 당국자들은 "남북 정상회담 비공개 접촉의 주역인 송 부위원장이 우리 당국과 얘기하고자 할 경우 기꺼이 응할 것"이라며 자연스런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송호경 부위원장은
북측 조문단 단장인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상대역으로 남북 정상회담 막후 교섭을 담당했던 대남 실력자.
현대의 대북사업을 사실상 총괄하면서 정주영 전 명예회장 및 정몽헌(鄭夢憲) 회장을 방북 때마다 영접했다.
1940년 평북에서 태어나 김일성 종합대를 나왔고 오랫동안 외무성과 노동당을 오가며 북미회담과 대남사업을 관장했다.
조용한 성격에 아이디어가 풍부하고 일처리가 치밀하며, 두부불사의 애주가로 알려져 있다. 서울방문은 1999년 12월 남북 통일 농구대회 때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온 데 이어 두번째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현대 반응 / "예상 못했는데..." 반색
현대측은 23일 "북에 보낸 부고장에는 단순히 정 전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만을 전했다"면서 "조문단 방문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크게 반겼다.
현대는 북한에 부고장을 보내면서 북측 인사의 직접 조문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현재의 남북관계가 제3차 장관급회담 무산 등으로 다소 껄끄러운데다 장례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조문단은 조문 이외의 다른 일정이 없다"면서도 "북한이 정 전 명예회장의 타계를 크게 서글퍼 하는 만큼 남북관계에서도 의미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사장은 지난 주 북한을 방문, 북한측과 금강산 관광 대가금 인하를 비롯한 경협사업 협의를 벌이던 중 정 전 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을 듣고 급거 서울로 돌아왔다.
북한의 조문단 파견은 교착상태에 빠진 현대의 금강산사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 수도 있다는 추측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조문단이 현대의 대북사업 파트너인 아시아태평양위원회 관계자들인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전 원문과 조화를 직접 가져오기 때문에 현대측의 대북사업에 어떤 형태로든지 영향을 줄 것 이라는 얘기이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