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이라고 TV 어린이 프로에나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지 마라. 상상력과 테크놀로지는 목각인형에까지 생명을 불어 넣었다.생명을 얻은 인형들이 의(義)와 이(利), 사랑과 복수를 위해 기예를 겨루고 허망한 무림의 세계를 떠난다.
3차원 컴퓨터그래픽으로 인형을 움직이게 한 디즈니의 '토이 스토리'와도 다르다.
'월레스와 그로밋' 같은 점토 애니메이션도 아니다. '성석전설(聖石傳說)' 은 인간 대신 인형이, 인간의 감정과 움직임이 살아있는 인형이 배우로 직접 연기를 한다.
처음에는 표정없이 눈과 입만 움직이는 표정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무협물의 전형인 선악의 대결, 상상을 뛰어넘는 액션, 이어질 듯하다 어긋나는 사랑이 현란한 SF기법, 중국 특유의 비감한 음악, 전통의상과 분장 등에 젖어들면 그 다음은 호기심을 뛰어넘어 살아있는 인형의 환상 세계에 빠져든다.
같은 대만 출신인 '와호장룡' 의 리안 감독, SF액션의 대가인 홍콩의 서극 감독의 세계와는 맛과 재미가 또 다르다.
배우가 인형이란 점만 빼면 인물과 구성은 여느 무협물과 다를 바 없다. 마괴 흑골기가 노리는 '어떤 소원도 들어준다'는 보물 천문석이 존재한다.
세상에 대한 복수심에 사로 잡힌 골피 선생과 세상을 평안케 하려는 현자인 소환진, 그의 의형제 청양자, 무림 고수 오소홍진이 있다.
영화는 비극의 극대화를 위해 그들을 운명적으로 엮어 놓았다. 골피 선생에게는 착한 딸 려빙이 있으며 오소홍진은 골피 선생의 친구로 려빙을 사랑하고, 소환진은 골피 선생의 음모에 말려 오소홍진과 목숨을 건 결투를 한다.
딸까지 죽이며 천문석을 얻은 골피 선생의 최후, 끝내 려빙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검을 강에 던지고 강호를 떠나는 오소홍진은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무협물의 의(義)와 허무주의의 표현이다.
때문에 '성석전설'의 매력은 스토리에 있지 않다. 가장 전통적인 인형극과 최첨단 특수효과와 정교한 미니어처로 창조한 화려한 SF적 판타지에 있다.
그 결합이 어긋나 때론 만화 같이 유치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화염곡에서 오소홍진과 소환진, 려빙이 벌이는 모험과 위기의 액션장면 하나로도 이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 의 어드벤처와 '스타워즈'의 상상력을 뛰어 넘고도 남는다.
황치앙화(黃强華) 감독은 주(周)시대부터 시작된 전통 인형극 '푸다이시(布袋?)'를 무대공연과 달리 어떻게 스크린에 옮겨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대형 화면에서의 사실감을 위해 머리카락 한 올까지 고증에 충실하고 정교하게 연출했다. 장면을 짧게 끊음으로써 갖는 생동감으로 인형의 움직임이 갖는 한계를 극복해 냈다.
중국계 영화로서는 또 하나의 장르를 개발해낸 셈이다. 그들은 그것을 전통예술에서 찾아냈다. 평가와 흥행결과를 떠나 부럽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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