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문의 재정안정성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에 경제위기 이후 대규모의 금융부실과 기업부실이 정부부담으로 전가된 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정부의 재정파탄을 피하려면 합리적인 운용이 최우선이다. 재정의 현재와 미래를 동태적으로 인식하고 미래의 수지불균형을 예측하여 대책을 수립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운영하는 종합적 관리능력이 필요하다.
예산, 기금, 통합재정, 공기업 등의 정부회계는 정부재정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고 미래의 재정여건을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사용하는 회계 중 가장 넓은 범위를 지닌 통합재정마저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기금의 일부만 포함시키고 지방정부와 공기업은 제외하고 있다.
또한 통합재정에 포함되는 국민연금재정에 대해 현금주의 회계만을 적용함으로써 통합재정의 건전성이 과장되고 있다.
더구나 통합재정의 건전성을 과시하려는 일부 정책담당자들은 이러한 착시현상을 악용하고 있다. 건강보험의 재정파탄 역시 이렇게 정부가 재정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리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정부채무가 경제규모에 비해 과다하다고 무조건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높이려면 정부채무가 경제규모보다 더 빨리 늘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수지를 개선하는 동시에 소비성 지출을 억제하고 교육, 사회간접자본, 과학기술, 연구개발, 환경 등의 투자성 지출의 비중을 높여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험 확대는 필요하지만 사회보장이 국민경제의 부담능력을 앞지르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사회보장과 경제성장을 조화시키는 장기적인 안목과 지혜가 필요하다.
정부는 2000년에 중앙정부의 채무가 108조원에서 120조원으로 12조원 증가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작년 중앙정부 재정규모(일반회계+재정융자특별회계 순증)의 13%, 국내총생산량(GDP)의 2.3%나 해당된다.
더욱이 정부가 발표한 채무는 중앙정부가 직접 지불의무를 지는 국채, 차입금, 국고채무부담행위만을 포함했기 때문에 정부예산, 기금, 비금융 공기업, 금융공기업, 사회보험 등을 포함하는 공공부문의 종합적 재정건전성의 실상을 반영하는 지표로 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정부가 발표한 채무에는 금융구조조정에 투입된 104조원의 공적자금, 한국은행의 누적적자를 반영하는 통화안정증권과 해외차입금, 국민연금을 포함하는 4대 연금의 지불준비금 부족액 등이 제외되어 있다.
그 결과 정부의 회계는 공적자금의 회수불능에 따른 납세자 부담을 분명하게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지급되기 시작하는 2008년 이후의 국민연금 적립금의 급속한 감소가 불러올 거시경제적 충격과 2030년대말에 모습을 드러날 연금기금의 고갈로 인한 국민부담의 폭증을 예고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부문의 재정 안정을 위해 정부가 최근 발표한 세율 인하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국세행정의 합리화와 신용카드 소득공제 등으로 사업자의 과세표준을 양성화해 세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세율을 낮추겠다고 한다.
그러나 과표양성화에 따른 세부담 증가는 탈세를 줄인 결과이므로 납세자에게 억울한 일이 될 수 없다.
세계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었고 불완전한 구조조정으로 한국의 경기전망이 밝지 않으며 재정불안정에 따른 국민불안이 고조된 현 시점에서 감세로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여 뚜렷한 경기부양효과를 얻기는 어렵다.
과표양성화에 따라 세수입이 소규모로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부문이 처한 재정 위기에 비추어 볼 때 납세자의 환심을 사거나 확실하지도 않은 경기부양을 위해 세율을 낮추기 보다는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재정건전성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이다.
윤건영ㆍ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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