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국가이다."(도널드 럼스펠드 미국 국방부 장관) "모든 핵 조약을 재검토하겠다."(예브게니 아다모프 러시아 원자력부 장관)미국과 러시아가 냉전 시대를 방불케 하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감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추진에 강력하게 제동을 걸고 미국이 깡패국가(rogue state)로 규정한 이란에 러시아가 무기 수출을 재개하면서 양국 모두 외교적 자제력 마저 잃는 모습이다.
럼스펠드 미 국방부 장관은 최근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라프와의 회견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서유럽에 문제를 일으킬 만한 나라들에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대량살상무기 확산국"이라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이어 NMD 추진의 국제법적 걸림돌인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조약과 관련, "어느 국가든 탄도미사일을 가질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 기능을 잃었다"고 강조했다.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도 " 러시아가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목을 맬 동아줄까지 팔고 있다'는 레닌의 말을 상기시킬 정도로 돈 벌이를 위해 뭐든지 팔려 한다" 면서 "모스크바는 미국과 거래를 중단하든지, 무기를 팔든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맞서 러시아 외무부는 20일 럼스펠드와 월포위츠를 지목하면서 "미국이 증거도 없이 러시아에 대량살상무기 유포국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면서 "이 같은 작태는 NMD 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냉전식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또 아다모프 원자력부 장관은 "러시아는 국익에 반할 경우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과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핵 관련 조약에서 탈퇴하거나 전면 재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의 발언은 CTBT의 의회 비준 조차 못 받는 상황에서 NMD 추진을 위해 ABM 파기를 공언하는 미국을 직접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해석된다.
양국의 공방전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대 러시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NMD에 반기를 들고 공세적으로 부국강병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표출된 측면이 있다.
뉴욕 타임스는 20일 최근의 양국갈등을 이같이 분석하면서 부시의 정책 브레인들이 빌 클린턴 전 행정부가 견지해온 외교와 경제 지원을 통한 개입정책 대신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러시아를 제압하길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부시 행정부는 15일 러시아의 핵 비확산 활동을 지원하는 예산도 삭감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도 미국을 자극할 만한 외교전을 강화하고 있다. 이고리 이바노프 외무부 장관은 20일 유고에서 미국이 개입을 원치 않는 발칸 지역에 유럽 군대가 진주해주길 원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는 미국과 외교적으로 마찰이 심한 프랑스에서 부시 행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라크 제재 해제문제 등을 협의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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