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교 졸업장 하나로 상경해 세계 굴지의 기업들과 자웅을 겨루는 현대그룹을 이룬 고 정주영명예회장은 삶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그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안팎의 만류를 무릅쓰고 잇따라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거대한 결실들을 이뤄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결코 우연히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고 정 명예회장은 평소 '선진국들이 100년에 걸쳐 쌓은 기술을 최단기간에 따라잡기 위해서는 그들이 100보 걸을 때 우리는 1,000보 뛰는 수밖에 없다'는 신조로 밤을 낮 삼아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는 '신용'을 목숨처럼 중하게 여겼다. 이같은 그의 자세가 정부와 금융권은 물론, 해외 발주자, 금융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고 오늘날 현대를 지탱하는 뿌리가 됐다.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실패가 예상되는 사업도 신용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쌀가게를 운영하면서 웬만큼 돈을 모았던 고인은 1940년 더욱 큰 돈을 벌기 위해 자동차수리업에 진출했다. 그러나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아도써비스'를 차린지 20일만에 큰 불이 나고 말았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 할 물을 데우기 위해 불을 지피던 중 불씨가 신나통으로 옮겨붙어 순식간에 건물 전체와 자동차수리를 위해 맡겨놓은 고급 승용차들을 모두 태우고 말았다.
쌀가게에서 번 돈 800원은 물론 3,000원의 빚까지 몽땅 날린 그는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돈을 빌려줬던 전주(錢主)를 찾아가 추가로 돈을 빌려줄 것을 사정했다. 그가 전주로부터 현재 가치로 환산해 4억원에 해당하는 3,500원을 다시 무담보로 빌려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정주영은 확실한 보증수표'라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었다.
그는 1년만에 이자까지 붙여 돈을 갚았다.
6ㆍ25전쟁이 끝나고 정부는 각종 기반시설 복구사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현대건설을 설립한 그는 이중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공사를 수주했다. 계약조건은 공사기간 26개월에 총공사비 5,478만환.
그러나 겨울에는 쌓인 모래로 얕아지고 여름에는 물이 불어 겨울의 몇배에 이르는등 공사현장 여건이 최악의 상황인데다 장비마저 부족해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공사를 시작할 때 40환이던 쌀 한가마 값이 공사가 끝날 때는 4,000환에 이를만큼 물가가 폭등했다. 당연히 철근, 콘크리트, 목재등 공사 자재값과 노임도 하루가 다르게 뛰어올랐다.
공사 중반을 지나자 계약했던 공사비가 계약금액을 초과했다. 노임은 밀리고 자금을 빌려준 전주들이 갚으라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 계속되자 임원들은 공사를 중도에 포기하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그는 "신용을 잃으면 사업가의 생명은 끝난다"며 또 다른 빚을 얻어 공사를 마무리했다. 결국 그는 7,000만환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냈다.
그러나 이같은 그의 정신을 높이 산 정부가 2억3,000만환 규모의 한강인도교공사와 같은 대형공사를 잇따라 맡겼고 건설분야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다.
서산농장 간척사업을 펴던 84년에는 현장 직원들과 "모레 식사나 한번 하지"라고 지나가듯 말하고 서울에 돌아왔는데 약속 당일 사상 최대 폭우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나타나 직원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각당, "위대한 경제인을 잃었다" 애도성명
▽민주당
민주당 김영환(金榮煥) 대변인은 21일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에 대해 성명을 내고 '고인은 빈곤의 한 세기를 국민과 함께 넘어온 위대한 경제인이었다'면서 '서해바다를 막고 소떼를 몰아 휴전선을 넘던 그가 남북통일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떠난 것을 애도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그의 타계를 계기로 우리는 오늘의 어려운 경제현실을 극복하는데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면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강원기자
▽한나라당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 수석부대변인은 21일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에 대해 논평을 내고 "재계의 큰 별이진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며 애도를 금치 못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장 부대변인은 또 "정 명예회장의 여러가지 공과에 대한 평가가 많지만 공업입국과 경제발전을 위해 기여한 공로는 아무리 평가해도 모자라지 않다"고 덧붙였다.
▽자민련
자민련 변웅전(邊雄田) 대변인은 21일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에 대해 성명을 내고 "우리나라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우리 현대사의 거목 정 명예회장의 영전에 삼가 명목을 빈다"고 애도했다.
변 대변인은 "정 명예회장께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생전의 꿈이었던 통일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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