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건강보험재정이 파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대통령까지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이런 일이 왜 벌어졌는가.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준비 안된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을 강행한데 있다.정부는 보험료 공평부담방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의료보험통합을 추진했다. 통합만 되면 보험료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 때문에, 보험료의 적정 수준으로의 인상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통합 전에 비해 징수율까지 하락함으로써 지역보험재정의 불안정을 부채질했다. 한편 통합을 앞두었던 직장조합들은 당기적자에도 보험료율 인상을 기피해 1996년말 2조5,000억원을 상회했던 적립금으로 적자를 보전한 결과 작년 말에는 적립금이 8,000억원 수준으로 줄어들어 재정이 부실해지게 되었다.
이처럼 보험재정의 불안정해지는 시기에 강행된 의약분업은 보험재정을 파산으로 몰았던 것이다. 이런 사태의 발생을 사전에 예상하고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는데도 그렇게 하지 못한 정부는 이제 할 말이 없는 듯 하다.
대선 공약이니 국정과제 또는 개혁과제라는 미명아래 현실을 무시하고 사전에 철저한 준비없이 조급하게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험이나 다름없는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정책을 강행했던 것은 분명 정부의 실책이라 하겠다.
보험재정난 타파를 위한 근본적 방안은 물론 이를 초래한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정책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이로써 더 큰 혼란이 야기되어 국민들에게 또다른 고통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따라서 혼란 없이 합리적으로 재정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하나 서둘지는 말아야 한다.
당장에는 사태를 초래한 정부가 불을 꺼야 할 책임이 있기에, 시급한 보험재정소요는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국고지원과 아울러 정부가 지향했던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보험재정 추가확충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 하나는 담배소비세, 주세, 교통주행세 등 우리 건강을 해치는 상품에 부과되는 소비세에 건강보험료를 부가 징수하는 방안이다.
재정확충수단의 하나이기도 한 이 방안은 건강에 해로운 행위가 원인이 되는 질병들이 보험재정을 잠식해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보험료에 그 부담이 전가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더불어 근로소득외에 원천 징수되는 소득에도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징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산소득이나 자영소득이 많을수록 보험료 부담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부담의 공평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소비세와 부가가치세에도 보험료를 부가 징수하되, 연간 일정액 이하의 보험료를 환불함으로써 저소득자의 추가부담을 방지하면서 고소득자의 부담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끝으로 정부는 직장과 지역의 보험재정 통합을 자영자 소득 파악률이 70%이상으로 높아진 후로 연기해야 한다.
조세정의가 실현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율을 인상해 통합보험재정 적자를 충당하려 한다면 근로소득이 유일한 직장근로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될 것이므로 이는 통합이 지향하는 공평부담의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때문에 직장과 지역 보험재정을 분리 운영하고, 더 나아가 조직까지도 분리 운영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적기에 적정수준의 보험료율 인상을 용이하게 해 직장보험재정만이라도 안정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리라고 본다.
아울러 지역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운 만큼 보험료 인상도 쉽지 않은 지역보험재정의 안정화를 위해서는 징수율 제고, 국고지원 확대 및 직장과의 재정조정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병익ㆍ성균관대 의대 교수ㆍ사회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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