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과 습관성 유산의 주범은 낙태수술? 우리나라가 '낙태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지는 이미 오래다. 청소년에 대한 성교육이 강화되고 다양한 피임법이 도입되면서 다소 줄기는 했지만, 낙태수술 비율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우리나라 여성들의 무분별한 낙태 시술이 불임과 습관성 유산을 초래하는 주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이 1991~9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기혼여성 2명 중 1명꼴로 낙태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최근인 97년 조사자료를 보면 15~44세 기혼여성 중 한 번 이상 낙태수술을 경험한 비율이 44.2%나 됐다.
산부인과학계에서는 그동안 150만~200만 명의 여성이 낙태수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낙태 여성의 평균 연령이 1980년대만 해도 출산이 끝난 30대였으나, 90년대 중반 이후 2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을지병원 산부인과 권혁찬 교수는 "낙태수술의 범람은 습관성 유산과 불임의 증가를 부채질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잦은 낙태는 자궁내막의 약화 초래
낙태수술이 유산과 불임을 초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수술 과정에서 자궁내막이 손상될 위험이 크다. 더욱이 잦은 낙태수술은 자궁내막을 점점 약화해 임신 성공률을 떨어뜨리고, 설사 임신이 되더라도 자연 유산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정상 여성의 자궁내막은 생리시작 후 14~15일이 지나면 두께가 10~14㎜ 정도로 두꺼워져 배아세포의 착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낙태수술 등으로 자궁내막이 손상된 여성은 자궁내막이 두꺼워지지 않아 배아세포의 착상이 어렵기 때문에 임신이 힘들어진다. 자궁내막의 두께가 7㎜ 미만이면 임신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6㎜ 미만이면 임신이 거의 불가능하다.
⊙ 자궁내막 두껍게 하는 호르몬 요법
자궁내막이 얇아져 임신이 어려운 여성에겐 호르몬 요법이 유일한 대안이다. 을지병원 권 교수는 최근 대한불임학회에서 자궁내막이 얇아진 여성에게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보완요법을 시행한 결과 정상에 가까운 임신 성공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권 교수팀은 최근 2년간 임신이 안 돼 인공수정 시술을 받은 여성 환자 346명을 자궁내막의 두께가 7㎜ 이상인 그룹과 7㎜ 미만인 그룹으로 나눠 '에스트로겐 보완요법'을 시행했다. 그 결과 자궁내막이 정상적인 여성은 임신율 21.4%, 임신유지율 17.3%, 에스트로겐 요법을 사용한 자궁내막 손상 여성은 임신율 20.4%, 임신 유지율 18.4%를 보였다. 에스트로겐 보완요법을 사용하지 않은 자궁내막 손상그룹은 임신율 4.6%, 임신유지율 1.6%에 불과했다.
권 교수는 "생리 시작 2~3일이 지난 뒤부터 일정량의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자궁내막의 세포가 증식되면서 내막이 점차 두꺼워진다"며 "자궁내막이 얇아져 임신이 어려운 여성들의 경우 에스트로겐 보완요법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자궁내막의 기저층이 심하게 손상된 여성은 호르몬 요법을 적용해도 자궁내막이 두꺼워지지 않는다"며 "잦은 낙태수술로 자궁내막을 손상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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