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있어서 금융은 흔히 인체의 혈액에 비유된다. 피가 제대로 순환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돈이 잘 돌지 못하면 경제가 굴러가기 어렵다.그만큼 금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 장사'를 하는 은행 보험 증권사 등은 주식회사 임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라고 부르지않고 '금융기관'이라고 불러왔다. 수익성 못지않게 공공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재정경제부는 얼마 전 공식자료에서 금융기관 대신 금융회사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처럼 느껴지는 금융기관 대신 은행도 상업성을 추구하는 엄연한 회사라는 뜻에서"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재경부에 앞서 금융기관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같은 의도에서다.
■서강대 김병주 교수는 지난달 열린 금융기관 최고 경영자 연찬회에서 금융자유화와 부실 금융기관 퇴출을 주장하면서 "일부 정치세력은 금융을 선거의 전리품을 획득하는 수단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의 월프레드 호리에 행장은 한 경영조찬회에서 한국이 OECD에 가입한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라며 따라서 금융이 더 이상 사회적 역할, 즉 정부의 돈 지갑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은행들이 그 동안 회사가 아닌 기관으로 불려왔던 근본적인 이유다. 금융회사라는 명칭 사용은 이헌재 초대 금감위원장이 처음 시도했다.
관치금융의 종언과 금융의 진정한 자율화를 이야기하면서 였다. IMF체제가 '강요'한 성격이 짙지만 옳은 방향이라고 받아들였는데, 3년이 지나도 '용어 문제'가 계속 논의되는 것을 보면 정부의 기본적인 인식은 아직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은행들이 사실상 정부 기관이어서 그런 것일까. 언어는 사고를 제한한다고 한다. 용어 변경이 금융 개혁 가속화의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해 본다.
/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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