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보리밭에서 영그는 '大作의 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보리밭에서 영그는 '大作의 꿈'

입력
2001.03.19 00:00
0 0

"나의 진정한 작품세계에는 언제쯤 도달하게 될 것인가. 분출하는 역동성, 끈질긴 생명력을 내포하는 민족혼을 지닌 대작을 그리고 싶다." 91년 에세이집 '이브의 보리밭' 에서 대작에 대한 의지를 다졌던 이숙자 고려대 교수(59)가 10년 만에 '백두산' 이란 작품으로 그 꿈을 이루었다.21일부터 4월3일까지 선화랑과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이숙자전은 '한국적 채색화' 의 작가가 강인한 탐구욕으로 쌓아온 작품세계를 7년 만에 한꺼번에 풀어놓는 자리이다. 94년 선화랑 개인전 이후 서울에서 처음 여는 대규모 전시회다.

"99년 권옥연 민경갑 이종상씨 등 미술인 11명과 7박 8일간 평양과 백두산을 방문했습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백두산 천지에 발을 담그는 순간 너무나 가슴이 벅차더군요.

백두산의 정기를 형상화하고 싶어 암채물감과 금가루를 뿌려 99년부터 2년 작업으로 완성한 그림입니다." 150호짜리 캔버스 8개를 연결해 완성한 가로 14.5m의 초대형 작품은 보리밭에서 추구해온 '민족성' 이라는 주제가 더욱 장대한 스케일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숙자 작품세계의 묘미는 여전히 보리밭이다. 이교수가 70년대 초반부터 발표하기 시작, 25년 넘게 매달려 온 보리밭 시리즈는 우리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을 풀어내는 서정적 과정이기도 하고 관능적인 여체를 통해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의 장이기도 하다.

보리밭은 변화무쌍하다. 순수한 보리밭만 모티프로 한 것도 있고, 달개비꽃, 망초꽃이 피어있는 청맥, 바람결에 춤추는 황맥으로 단순한 변주를 추구한 것도 있다.

최근작에서는 석보상절과 훈민정음의 구절을 보리밭 배경화면에 넣거나 헝겊에 그려 만장처럼 휘날리게 했다. 보리 이삭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낱알 하나마다 명암을 넣고, 부조로 처리하기도 했다. 보리밭에 발가벗고 누워있는 '이브' 역시 더욱 대담한 자세의 여체로 변했다.

머리카락 한올 한올, 보리수염 하나하나에 불어넣은 기(氣)와 혼(魂)은 한때 일본화의 아류라 배척당하던 풍토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나갈 수 있었던 채색화 작가로서의 고집과 힘, 그리고 밑바탕에 깔린 견고한 실력을 헤아릴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작업하기가 어렵고 부담스럽습니다. 지난 2년간 일산 작업실과 학교, 분당 집만을 오가며 하루 17시간씩 작업에만 매달렸지요." 근성 넘치는 작가, 성실하고 진지한 작가가 조심스럽게 내놓는 노작(勞作)들이다.(02)734-0458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