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와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동원증권, ㈜팬택, 과학기술부가 후원하는 월례 과학강연 '사이언스 어드벤처 21'의 첫 지방강연이 17일 오후 대구 경북대 전자계산소에서 개최됐다.5회째를 맞은 이번 강연의 주제는 '지구 위 또 하나의 태양 - 핵융합'. 핵융합연구개발사업단장 이경수(李京洙ㆍ45ㆍ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가 미래 에너지원으로서 핵융합의 중요성 및 한국과 세계각국의 연구 동향에 대해 강연했다.
대구과학고, 신명여고 과학반 학생들을 비롯해 350여명의 청중들은 지구상에 인공태양을 건설하려는 과학적 도전을 설명하는 이 박사의 강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다.
지방에서 평소 과학적 정보에 접근할 통로를 제한받았던 때문인지 과학고ㆍ과학반 학생 또는 과학교사 등 과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고의 과학 지성을 만나보고 직접 연구 동향을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청중들의 얼굴표정은 진지했다.
제자들을 인솔하고 온 신명여고의 한 교사는 "대학 때부터 토카막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이경수 박사의 강연과 영상자료를 비디오로 촬영했다.
과학적 탐구욕을 해소할 길이 없어서 아쉬웠던 청중들은 강연을 앞두고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유전공학에 관심이 많다는 정영미(신명여고 2)양은 "게놈 프로젝트를 비롯해 생명공학연구가 요즘 활발한 것 같기는 한데 궁금한 점은 많아도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과학고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장동훈(대구과학고 1)군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도 궁금한 게 많지만 더 이상 깊이 있게 접근할 방법이 없다"며 "과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진 강연과 질의응답을 통해 핵융합과 플라스마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호기심은 더욱 깊어졌다.
"핵융합에 필요한 플라스마를 발생시키려면 초고온으로 가열해야 하는데 극저온에서 존재하는 초전도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물었던 이형민(대구과학고 1)군은 "핵융합으로 얻어지는 막대한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설명해달라"고 잇달아 질문을 던졌다.
이 박사는 "초전도체가 저항이 없으므로 원자력발전보다 20배 가까운 에너지를 흘려보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저온에서의 초전도자석만이 실용화한 상태"라고 답했다.
강연을 비디오로 촬영한 신명여고 교사가 "한국의 핵융합 장치인 KSTAR가 세계핵융합연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물었고, 이 박사는 "300초 이상 플라스마를 밀폐시킬 수 있다는 것은 물리학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플라스마를 오랜 시간 가두어놓고 운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가 "핵융합 연구는 별을 만드는 것이자 빛을 만드는 것"이라며 "우리는 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자, 최원형(대구과학고2)군은 '빅뱅(대폭발) 이후의 우주에 대해 인간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질문했다.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해 많은 것을 알아냈지만 아직 빅뱅 후 1초 동안의 상태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 박사의 설명이었다.
핵융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이루어졌다. 류주영(신명여고 1)양은 "핵분열 즉 원자력 발전과 핵융합이 다르다는 것부터 핵융합이 앞으로 인류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이경수 박사 강연요지
태초에 빛이 있었다. 150억년 전 대폭발(빅뱅) 후 1초쯤 지나 쿼크 같은 입자가 생겼다. 3분 후 입자들이 모여 양성자와 중성자를 만들었다.
30만년이 지나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결합돼 원자를 이루기 시작, 수소와 헬륨이 생겼다. 이것이 별을 이루고 별들이 은하를 만든 것이다.
그 별 중 하나인 태양은 중심온도가 섭씨 1,500만도. 이렇게 뜨거운 태양은 플라스마로 구성돼 탄화작용이 아닌 핵융합으로 에너지를 낸다. 은하수의 모든 별들이 마찬가지다.
우주물질의 99%는 플라스마상태로 돼 있고 핵융합에너지는 자연이 만든 가장 자연스런 에너지의 형태다. 이 에너지는 지구의 생명체의 근원이기도 하다. 태양이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지구에서도 만들 수 없을까?
이것이 바로 핵융합 연구다. 먼저 핵융합은 어떻게 에너지를 내는 것일까? 핵분열은 우라늄처럼 무거운 원소에 중성자가 부딪혀 핵이 갈라지는 것이다.
이 때 나뉘어진 입자들을 모두 합하면 처음 상태보다 질량이 가벼운데 그 차이(E=mc2)만큼 에너지가 나온다.
이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나오는 게 원자폭탄이고 천천히 제어한 것이 원자력발전소다. 그러나 원전의 문제는 우라늄 등이 갈라지면서 생성되는 요드, 세슘 등이 방사능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핵융합은 중수소(D)와 삼중수소(T) 또는 헬륨이 결합되면서 헬륨과 중성자 또는 양성자가 나오는 반응이다.
역시 처음 입자들의 질량 합보다 반응한 후 입자들의 질량이 가벼운데 그 차이가 에너지로 분출된다. 그런데 이 질량차이가 핵분열 때보다 훨씬 커 핵융합에너지는 핵분열에너지의 300배나 된다. 핵융합은 트럭 한 대분의 중수소만 있으면 유조선 11척 분량의 석유, 열차 100 량 짜리 250대 분의 석탄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문제는 양(+)전하를 띠는 핵끼리 결합시키기가 무척 어렵다는 사실이다. 핵이 가까워질수록 전자기력으로 밀어내는 척력(斥力)이 세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적으로 어느 한계를 넘으면 전자기력보다 핵력이라는 힘이 우세해지는데 핵력이란 바로 핵끼리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다.
핵융합은 핵을 전자기력으로 밀어낼 틈이 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가속시켜 핵력으로 결합시키는 것이다. 핵을 빨리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바로 뜨겁게 가열시킨다는 뜻. 그래서 플라스마가 필요하다.
플라스마란 고체 액체 기체에 이은 제4의 물질상태. 기체를 더욱 뜨겁게 하면 전자와 핵이 분리된 이온상태가 되는데 이것이 플라스마다.
태양에서 날아오는 태양풍, 북극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나 번개가 칠 때 주변에 어슴푸레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모두 플라즈마인데 온도와 밀도가 다를 뿐이다.
지구상에는 대기층이 있어 우주의 플라스마가 들어오지 못한다. 만약 지구에 플라스마가 있다면 인간을 구성하는 구성원소들이 모두 수소 탄소 질소로 깨져 날아갈 것이다.
플라스마를 인공적으로 만들려면 진공상태를 만들어 가열해야 한다. 플라스마를 만드는 방법은 전자에 자장을 걸어 가속시켜 중성입자에 부딪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연구의 초점은 플라스마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플라스마를 제어하지 않는다면 이온 입자들이 거의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주로 쓰이는 것이 자장으로 밀폐하는 방법이다. 플라스마 입자들은 전기를 띠기 때문에 진주목걸이가 목걸이줄에서만 움직이듯 자기력선을 따라서만 움직인다.
과학자들은 도너츠 모양의 원통에 자장을 만들어 플라스마를 가둔다. 이를 토카막 장치라 하는데 토카막 내부를 진공으로 만든 후 섭씨 4억 도 정도로 데워 플라스마를 형성하면 플라스마 입자들은 원통형 자장을 따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빙글빙글 돈다.
현재 핵융합 연구의 기술수준은 어디까지 와있을까? 처음 핵융합실험을 할 땐 자장을 형성하기 위해 투입되는 에너지가 핵융합으로 나오는 에너지보다 오히려 작았다.
그러나 1997년 일본의 실험결과 이 비율은 1.25배까지 와 있다. 투입에너지보다 산출에너지가 크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그러나 상용화하려면 이 비율은 20배는 돼야 한다. 어쨌든 1975년 처음 핵융합연구를 본격화했을 때 생산된 전력이 0.1W(와트)였던 데 비하면 1997년 10의7승W까지 발전했다.
30년간 효율이 10억 배나 향상된 것이다. 현재는 저항이 없는 초전도자석으로 자장을 만들어 효율을 높이려 하고 있다.
핵융합연구는 장래 에너지원을 좌우하기 때문에 세계 패권을 차지할 핵심기술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플라스마상태를 5분간 유지될 핵융합실험로 K-STAR를 2004년까지 만들고 있다. 물리학적으로 5분이란 그보다 더 오랜 시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
지금까지 기껏 몇 초 정도에서 한발 나아가는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
아직 난제는 많다. 그러나 가장 필요한 것은 연구비보다도 창의성을 갖고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이다. 핵융합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태초에 있었던 것과 같은 빛을 만드는 사람, 별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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