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0년 3월17일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프랑수아 드 라로슈푸코 공작이 67세로 파리에서 죽었다. 청장년기를 전장(戰場)과 정치판에서 보낸 라로슈푸코는 40대 후반에 들어서야 파란의 삶에서 발을 뺐다.그는 파리의 살롱을 출입하며 여성들과 우정을 나누면서 '잠언과 성찰'을 집필하는 것으로 만년을 보냈다. 만약에 이 책이 아니었다면, 오늘날 라로슈푸코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 모랄리스트의 직분이라면, 라로슈퓨코는 '성격론'의 라브뤼예르와 함께 그 직분을 가장 충실하고 냉정하게 수행한 사람이다.
'잠언과 성찰'의 초판은 1665년에 나왔고 라로슈퓨코의 생전에 5판까지 나왔다. 그 책 앞에 붙은 '자화상'에 따르면 라로슈푸코는 "침착한 성격에 균형 잡힌 체격을 지닌 중키의 사나이"이고, "표정은 어딘지 우울하고도 교만한 점이 있다."이 책의 '잠언'부분에는 641개의 잠언을 모았고, '성찰'부분은 취미, 인심의 차이, 거짓, 모습과 태도, 교제, 담화, 은거를 다룬 일곱 개 장으로 이뤄져 있다.
속표지에 표어로 내세운 "우리들의 미덕은 거의 언제나 위장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 이 책의 주제를 요약하고 있다. 결국 '잠언과 성찰'은 음모와 악의가 판치는 전장과 궁정에서 반생을 보내며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 염세주의자의 인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라로슈푸코는 신중하다. 그는 '거의 언제나''때로는''보통''일반적으로''대개'라는 부사어들을 끊임 없이 사용하면서 사람들 모두가 하잘 것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염세와 혐인(嫌人)과 운명론과 유물론이 뒤범벅된 이 우울한 책에는 어떤 귀족적 선(善)에 대한 저자의 갈구가 완강히 자리잡고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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