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10월 26일 세브란스 병원 정신병동.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장소로 이 곳을 선택했다.이 글은 앞으로 우리 가족 또는 고인의 동료교수에게 또 다른 위해가 가해질 경우 공개될 것으로서, 나의 최후의 글이 될 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글은 진실 이외 아무 가식도 없는 나의 유언이다.'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고 최종현 서울대 법대 교수의 동생 종선(54)씨의 수기 '산 자여 말하라'가 출간됐다.
책은 형이 죽은 직후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뒤 쓴 '양심선언'을 비롯해, 중앙정보부의 투신자살 발표에 대한 반박과 그 증거 등으로 구성됐다. 수기는 1975년부터 함세웅 신부에게 맡겨져 보관돼오다 1988년 월간지 '신동아'에 일부 내용이 게재됐다.
당시 자신도 중앙정보부 감찰실 직원이었던 최씨는 형의 죽음을 '고문치사'로 단정짓는다.
유신 정권이 대학 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내는 과정에서 고인이 조사를 받다가 중앙정보부 5국 직원들의 고문 끝에 숨졌다는 것이다.
최씨는 이에 대한 증거로 1973년 11월 28일 감찰실 게시판에 붙어있던 '부회보 제42호'를 내놓는다.
"5국 직원 2명이 용의자의 신변관리에 소홀해 물의를 야기시킴으로써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의 이 부회보야말로 형이 고문치사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내부 회람용 문건임에도 '간첩'이나 '투신자살'이라는 표현은 없다. 그들이 말하는 '신변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은 '잘못 고문해서 죽게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형의 죽음을 통보 받은 순간부터 중앙정보부로부터 받은 협박과, 중앙정보부의 변호인과 의사의 검시 입회 거절 등을 또 다른 증거로 내세운다.
중앙정보부 7층 화장실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감시인 2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창문에서 뛰어내릴 수 없다는 현장 답사 결과도 내놓는다. 책에는 저자가 1981년 중앙정보부를 사직한 뒤 94년 미국으로 이민간 후의 생활상도 실려 있다.
최종선 지음,공동선 발행
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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