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적인 사랑은 그 아이러니한 만큼이나 사람들을 자극한다. 실제로 그런 사랑을 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설령 기회가 오더라도 주춤거리다 발을 빼게 된다. 때문에 그런 사랑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 만큼이나 유혹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녀에게 잠들다'(감독 박성일)는 사랑, 집착, 일탈, 광기의 단계로 악화하는 사랑을 그렸다. 낯선 바닷가에서 만난 재모(이주현)와 수빈(김태연)은 폐선에서 함께 살며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재모가 뛰어난 음악적 자질을 갖고 있다고 믿는 수빈은 그의 성공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좌절한다. 실의에 빠져 있던 수빈은 이제 임신에 결사적으로 매달린다.
'연인 사이의 불소통' 은 영화의 주제 중의 하나인데, 그에 앞서 영화는 관객과 소통 불가의 단계에 이른다.
수빈이 재모의 성공과 자신의 임신에 왜 그토록 매달리는지 영화를 보면서는 이해할 수 없다. 다만 결말 부분 동생이 수빈의 정신병동으로 찾아와 "나를 찾은 후 (입양아인) 언니를 버릴 줄 몰랐다"고 말하는 대사로 의문이 풀린다.
느닷없이 터지는 수빈의 욕설과 자해에 관객은 감정이입이 되기는 커녕 난수표를 받아든 느낌이다.
많은 섹스장면, 여자의 광적인 집착이 '베티 블루 37.2'를 염두에 둔 듯 하지만 그만큼 충격적이지도, 일말의 공감도 가질 수도 없어 아쉽다. '파괴적 사랑'이 꼭 이해 못할 사랑과 동의어는 아닌데도 말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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