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담은 그릇, 정원(박정욱 지음, 서해문집 발행)▽시간창고로 가는 길(신현림 지음, 마음산책 발행)
400여년 전 한 묵객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을 바라보며 흥에 취해 노래했다. '원림 안 경치 소탈하고 물 뿌린 듯 시원하네/ 어지러이 물 흐르는 소리 소쇄정에 걸맞고/ 눈 들어 보면 바람 불어 시원하고/ 귓가에는 영롱한 패옥 소리 들려오네'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이 시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은 조선의 독특한 정원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눈 앞에 그리듯 표현했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어디 옛 정원뿐일까. 낡고 스산한 1960년대 방 한 구석을 겨우 비추던 호롱불이며, 한옥 마당 전부를 누르스름하게 채색하던 옹기며.. 세상이 각박할수록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만 간다.
'풍경을 담은 그릇, 정원'(박정욱 지음)과 '시간창고로 가는 길'(신현림 지음)은 이러한 서정에서, 우리 정원과 소품들을 차근차근 살핀 책이다.
조경컨설팅연구소 '랜드 플러스 아트'소장인 박정욱(40)씨는 조선 정원을 시와 자연이 하나가 된 시경(詩景)으로 풀이했고,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낸 시인 신현림(40)씨는 옛 소품에서 우리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다.
박정욱씨는 시 그림 글 노래 춤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으로서 정원에 주목했다. 일본의 석정(石庭)이나 중국의 석림(石林)처럼 자연물로 인공적인 풍경을 만든 정원이 아니라, 자연 속에 시적 형식을 집어넣은 정원이다. 그래서 시적 조경, 시경이다.
그는 이 시경의 가장 세련된 예로서 소쇄원을 비롯해 전남 보길도의 부용동(芙蓉洞), 경북 영양의 서석지(瑞石池), 전남 강진의 다산 초당, 창덕궁 후원을 꼽았다.
이중 전남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건평 92.4㎡의 소쇄원은 16세기 초 대사헌을 지낸 소쇄 양산보가 지은 대표적인 민간 정원.
이곳에서 그는 정원의 중심 건물과 연못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태극선 구조를 찾아냈고, 정원 안 조그만 연못에 괴석으로 쌓은 섬에서는 신선을 보았다.
고산 윤선도가 전남 해남군 보길도에 지은 정원 부용동에서는 절창 '어부사시사(漁父四詩詞)'를 읊어본다. 옛 정원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속을 거닐며 시를 읊어야 한다는 것이다.
'붉은 낭떠러지 푸른 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크고 좋은 물고기를 낚으나 못 낚으나/ 찌꺼덩 찌꺼덩 어야차/ 고주(孤舟)에 도통 삿갓만으로 흥에 넘쳐 앉았노라'
신현림은 훨씬 작은 것에 애착을 느꼈다. 용인 등잔 박물관, 영암 토지문화회관, 강릉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 안동 하회탈 박물관 등 전국에 흩어진 46개 박물관을 둘러보며 그 곳 작은 소장품에 깃든 향토미와 전통미를 참신한 시인의 언어로 되살려냈다.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모시옷을 보며 나는 뇌까렸다. 이젠 아무 옷이나 입고 싶지 않아. 결코 비싸거나 화려한 옷을 말하는 게 아니지.
바람 냄새, 나무 냄새가 나는 옷. 저 모시옷을 입으면 고독감마저 사라질 것 같지 않니? 한여름 불쾌감도 다 날려갈 듯 해."(충남 서천시 한산 모시관에서)
그의 눈에 비친 옛 것들은 모두가 경이로웠다. 박물관의 축음기에서는 '토마토 케첩 같은'음악이 흘러나왔고, 1934년 경주 흥륜사 터에서 출토된 소면와당(笑面瓦當)에서는 1,000년을 거뜬히 넘긴 신라인의 미소가 새어 나왔다.
시름시름 죽어가다 막걸리 스물 다섯 말을 마시고 살아났다는 포항 영일 민속박물관의 수령 600년 회화나무 앞에서는 또한 얼마나 놀랬을까.
저자는 "일회용 이미지에서 벗어나 생기를 주고 새로운 경험이 되는 고품격 이미지를 만나고 싶었다. 이 갈망을 채워준 곳이 다름아닌 박물관이었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첫 발길도 이 곳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온통 빠르게 흘러가는 현재의 시간을 잠시 멈춰 세워둔 채, 두 권의 책은 우리 삶과 그리움이 뭔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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