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부터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라가는 극단 자유의 '화수목 나루'는 지난해 딱 한 번 공연했던 작품이다. 문화관광부의 전통연희 개발지원금 1억원을 받고도 그리 된 것은 여러 날 비어있는 극장이 없었기 때문이다.지원 결정이 지난해 5월에 났다. 주요 공연장의 하반기 대관도 거의 끝났을 때다. 지원을 받으면 그 해 안에 공연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그렇게라도 공연해야 했다.
결국 관계자만 모아놓고 하는 단 한 차례 시연회로 그쳤지만, 배우 출연료와 제작비로 7,000만원이 날아갔다. 그것을 다시 공연한다. 이중으로 돈이 드는 셈이다.
극단 학전은 더 기막힌 일을 겪었다. 재작년 뮤지컬 '개똥이' 재공연에 서울시 지원금 1억원을 받았으나 끝내 극장을 잡지 못해 수천 만원 제작비만 날리고 1억원을 고스란히 반납했다.
이러한 현상은 공연 지원이 늦게 결정되는데다 그 해 안에 공연하게 돼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올해 무대공연 지원 내역은 이달 초 확정됐다. 총 140건 40억원이나 된다.
이 많은 작품이 올해 안에 공연돼야 하는데, 주요 공연장의 상반기 대관 신청은 이미 끝났다. 하반기로 몰릴 수 밖에 없다. 대관 경쟁이 치열할 것이 자명하다.
연극ㆍ무용 공연장으로 인기 있는 문예회관 대극장의 경우 하반기 대관은 하늘에 별 따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여섯 달 중 서울연극제, 서울무용제 등 한 달씩 하는 행사와 여러 단체의 정기공연을 빼면, 비는 날짜는 많아야 한 달 남짓. 비집고 들어갈 틈이 빠듯하기만 하다.
올해 서울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무용가 김모씨는 아무래도 대관이 어려울 것 같아 야외에서 천막 치고 공연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극장으로 가면 되지 않냐 싶지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작품 규모나 성격에 맞는 극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원을 받으면 그 해 안에 공연하라는 규정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1년 단위로 묶인 예산회계 때문이다.
국고나 지자체의 한 해 예산은 그 해 안에 써야 하고 이월을 못하게 돼있다. 이런 사정으로 해마다 연말이 다가오면 각종 지원금을 받은 대형공연이 봇물 터지듯 하루 너댓 작품씩 올라가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또 밀린 숙제 하듯 허겁지겁 올리다보니 졸작이 나오기도 한다.
반면 국고가 아닌 문예진흥기금의 공연 창작활성화 지원사업은 해당 작품의 공연 기한을 다음 해 연말까지로 규정, 시간을 넉넉히 두어 숨통을 터주고 있다.
국고와 지자체의 공연지원이 예산회계의 경직성 때문에 제 구실을 못한다면, 그 돈을 비교적 운용이 자유로운 기금으로 돌려 집행하는 방법도 검토할 만 하다. 지금의 지원 방식은 돈 주고도 욕 먹게 생겼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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