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4년 3월15일 로마의 종신 독재관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는 줄리어스 시저)가 원로원 회의장에서 브루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등 공화정 옹호자들의 칼에 찔려 죽었다. "브루투스여, 너 마저!"라는 그의 마지막 말은 후세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다. 비록 종신 독재자이긴 했지만, 그래서 마음 속으로는 황제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황제를 자칭한 적은 없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서양의 정치사에서 황제의 상징이다. 러시아의 황제를 칭했던 '차르'나 독일 제2제국의 황제를 칭했던 '카이저'는 카이사르라는 이름에서 온 것이다.
카이사르는 생전에 유럽 전체를 무대로 삼아 군인 겸 정치가로 살았다. 그는 로마의 속주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의 지방 장관이 돼 갈리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했고, 라인강 건너의 게르만 땅과 영국해협 건너의 브리튼 섬을 두 차례 씩 침공했다.
그는 또 정적 폼페이우스를 제압하기 위해 스페인과 그리스와 이집트를 누볐다.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에 간 카이사르가 자신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클레오파트라 7세와의 사이에 카이사리온(프톨레마이오스 15세)을 낳은 일화는 유명하다.
카이사르가 남긴 말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주사위는 던져졌다"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일 것이다. 앞의 말은 폼페이우스의 사주를 받은 원로원이 갈리아에 있던 카이사르에게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자, 기원전 49년 1월 로마로 진격하기 위해 갈리아와 이탈리아의 경계인 루비콘강을 건너며 한 말이다.
뒤의 말은 그보다 두 해 뒤인 기원전 47년 9월 소아시아의 젤라에서 미트리다테스 대왕의 아들 파르나케스를 격파하고 원로원에 보낸 보고서의 전문(全文)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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