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러시아가 반미(反美) 공동전선을 구축했다.이란 국가원수로는 40년 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은 12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카스피해 지위에 관한 협정 ▦양국간 장기적인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등을 체결하고 러시아로부터 군사 및 원자력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양국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나, '외세 불간섭 원칙'을 천명함으로써 미국의 세계 전략에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카스피해 반미연대
양국의 합의 내용 중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세계 5대 유전인 카스피해에 대한 영유권 협상에 제3국의 간섭을 철저히 배제키로 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그 동안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카스피해 자원분쟁에 개입해온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을 반감시키기 위해 그루지야 투르크메니스탄 카자흐스탄 등 다른 카스피해 공유국에 유전 개발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에 맞서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이 1월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영유권 로비에 나섰고, 이란도 5개 공유국 균등 분할 원칙을 주장하고 나섰다. 양국의 공조는 확인된 매장량만 160억~320억 배럴이나 되는 카스피해의 영유권 협상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러시아와 이란은 카스피해 최대 현안인 송유관 및 천연가스관 건설에도 공동 보조를 취할 태세이다. 미국의 석유자본은 지금껏 이란과 러시아를 배제한 채 투르크메니스탄의 카스피해 연안지역에서 카스피해를 관통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를 경유, 터키의 제이한에 이르는 '트랜스 카스피언 라인'을 옹호해왔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연간 수억달러에 이르는 통과세를 챙기기 위해 기존의 카스피해 우회 루트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해왔다. 향후 이란이 러시아측 제안을 적극 지지할 경우 미국 자본이 주축이 돼 건설 중인 기존 송유관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ㆍ군사적 반미공조
미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러시아가 수십억 달러 상당의 첨단 무기를 이란에 수출키로 합의한 사실이다.
러시아 언론들은 러시아가 최첨단 전투기인 미그-29 등을 포함해 연간 2억~5억달러 상당의 무기를 이란에 수출할 것이며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Top M1'과 'S-300P' 등도 검토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메흐디 사파리 모스크바 주재 이란대사는 한술 더 떠 "수년간 70억달러의 러시아제 무기를 수입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란을 '깡패국가(rogue state)'로 규정하고 각종 제재를 가해온 미국은 당연히 발끈했다. 리처드 바우처 미 국무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방어용' 무기 판매를 발표하자마자 "러시아와 미국 모두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며 판매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미 1995년 미국과 비밀리에 체결한 대 이란 무기판매 금지 협정을 파기한다고 선언한 러시아는 "이란은 자국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로 맞섰다. 미국은 오는 15일 시한인 대 이란 교역 및 투자 금지 조치를 연장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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