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중부 힌두쿠시 산맥 깊숙이 자리한 바미얀은 세계 최고 불교유적의 하나다. 실크 로드의 요충이었던 이 곳에는 2~5세기 쿠산 왕국이 남긴 불교사원과 암벽 불상, 동굴 불화 등이 지천으로 널려있다.수도 카브르 박물관에 옮겨진 불상만도 6,000분이 넘는다. 특히 이 유적은 동서 교역의 교차로답게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예술의 특성이 혼합돼 유례없이 독특하다. 이 바미얀 유적 파괴가 국제적 논란을 부른 배경이다.
■아프간을 장악한 회교 원리주의 탈레반 세력은 지난달 높이 53㎙ 거대 암벽 불상 등 모든 불상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했다.
표면적 명분은 이슬람 원리가 조각한 우상 숭배를 금한다는 것이다. 일부 불상 파괴가 확인되고, 거대 불상에도 폭탄을 장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구 사회는 타 종교에 관대한 회교 전통과도 어긋난 광신적 폭거라고 비난했고, 유엔 사무총장이 그제 파키스탄에서 탈레반 외상을 만나 인류 문화유산을 보존할 것을 설득했다.
■그러나 탈레반 외상은 "산 아프간 국민보다, 죽은 돌부처를 걱정하느냐"며 이를 일축했다.
여기에 사태의 진정한 곡절이 숨어있다. 아프간은 20여년 지속된 내전으로 피폐한 데다가, 국제 테러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다는 이유로 서구가 주도한 유엔의 경제제재로 질식할 지경이다.
특히 지난해 가뭄으로 식량난이 악화하자 바미얀 유적을 관광지로 개방했으나, 유엔은 오히려 아프간 항공의 외국취항을 막는 등 제재를 강화했다.
■이런 곡절은 사태를 객관적으로 봐야 할 당위를 일깨운다. 아프간을 황폐화한 내전부터가 강대국간 냉전의 산물이다.
광신집단으로 비난 받는 탈레반은 당초 내전으로 파괴된 불상을 수습, 박물관에 모셨다. 그러나 이미 숱한 불상이 서구로 유출돼 암거래되고 있다.
그 서구 사회가 실체도 불분명한 테러범을 고리로 탈레반을 압박하는 이유는 회교 원리주의를 막으려는 것이다. 탈레반의 불상 파괴는 이런 서구 사회의 위선을 깨려는 승부수인 셈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