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유전자원 보유국인가, 이용국인가? 4월 28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유전자원 및 전통지식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의 첫 회의를 앞둔 우리의 입장은 여전히 딜레마에 빠져있다.우리의 기술력을 볼 때 브라질, 페루, 필리핀 등의 자원보호정책도 우려스럽지만, 선진국의 공격적 자원 채취에 대해선 우리 것이라도 보호해야 한다는 소리도 높다.
■유전자원 왜 중요한가
단순한 생물체가 '유전자원'으로 활용되면 그 부가가치는 금값의 수천배다. 세계 통신시장의 규모와 맞먹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국가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확립하기 위해선 어디에 무슨 종(種)이 서식하는지 조사한 데이터베이스가 기초다.
또 추출물 시료와 종자를 냉동보관하는 자원은행이 운영돼야만 신약개발자 등이 재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생태계를 보전해 다양한 생물종 자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유전자원 현황
그러나 우리나라엔 국내 유전자원에 대한 총괄적 관리체계가 전무하다. 대학 박물관 등에 산재돼 있고 허술하게 방치돼 자원 아닌 박제일 뿐이다.
환경부가 추진하는 생물자원보전관과 생명공학연구원 정혁 박사가 자생식물 4,000종을 조사하는 10년짜리 연구사업이 이제 시작이다.
양도 적다. 가장 널리 이용되는 유전자원인 미생물의 기탁(특허를 낸 미생물은 국제기탁기관에 보관됨) 건수는 1997~99년 2,143건, 세계 기탁량의 1.95% 뿐이다.
미국이 50.88%(5만 5,802건)를 차지해 독보적이다.
유전자원의 DNA분석 수준은 더욱 저급하다. 미국 150만건, 일본 18만건에 비해 우리나라는 8,800건.
미국이 분석한 건수의 0.6%, 일본의 4.9%에 불과하다.
우린 또 개발정책에 치우쳐 곳간 문을 열어둔 채 지냈다. 녹색혁명의 토대가 된 밀의 반왜성인자는 토종인 '앉은뱅이 밀'에서 유래했지만 우리나라에선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에는 우리 재래 작물종 5,730여점이 보관돼 있다.
■총 없는 전쟁-자원확보
제약회사는 자원전쟁의 첨병이다. 머크사는 10년 동안 열대림의 50여만종 동식물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여기서 25가지 신약만 개발해도 본전을 뽑고 남는다는 계산이다. 의료봉사를 구실삼아 특이 체질을 가진 종족의 혈액을 채취하는 '게릴라전'도 있다.
우리나라의 은행잎은 약효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1980년대 우리는 헐값으로 은행잎을 팔아 이것으로 만든 혈액순환개선제를 비싸게 샀다.
지금은 우리도 기넥신, 징코민 등 약을 개발했다. 전문가들은 은행잎, 고려인삼 등을 예로 들어 질 높은 유전자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전자원 어떻게 보호받나
유엔개발기구(UNEP)가 조사한 보상 사례가 있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가 아프리카 말리의 야생 쌀에서 고조병 저항성 유전자(Xa21)를 분리, 특허출원한 후 판매액 일부를 장학금을 보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분히 '인정상'의 제도다. 지난해 아프리카단결기구(OAU)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한 유전자원 보호법안은 자원보유국과 이용국이 발생이익을 반씩 똑같이 나눌 것을 제안했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신약은 수조 원의 로열티 수익을 건질 수 있는데 이대로라면 자원 보유국의 국부에 끼칠 영향도 대단하다.
'유전자원 및 전통지식에 관한 정부간 위원회'는 바로 이 예민한 쟁점을 논의한다. 전문가들은 "생명공학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유용성분을 생산하는 것은 생물체"라며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황금어장으로 인도하는 지도 작성과 같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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