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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유희, 대가들 속내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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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유희, 대가들 속내가 그대로

입력
2001.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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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령이 즐거움 추구라면, 드로잉만큼 본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상업적 목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므로 완결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남에게 보여주려는 그림이 아니므로 드로잉에는 작가의 솔직함이 드러나 있다.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 어느 것에도 속박되지 않은 채, 즉각적으로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창작 발상의 뿌리가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고, 때로는 드로잉 과정에서 벌어진 우연성과 작가의 내밀한 속내까지도 감지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손의 유희- 원로작가 드로잉전' 은 드로잉의 참맛을 안겨주는 전시회이다.

30만 인파를 모은 '오르세 인상파전' 의 화려함은 찾을 수 없지만, 꾸며지고 포장된 아름다움에 식상한 미술애호가라면 더 순수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듯하다.

출품작가는 김종하 박고석 장두건 전성우 최경한 배동신 서세옥 천경자 등 24명의 원로작가이다. 작가당 5점씩 130점이 전시된다.

출품 드로잉에는 우리 미술의 대가로 대접받는 작가들이 젊은 시절,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새로운 사조, 소재, 기법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던 치열한 과정이 배어있다.

날카로운 선으로 묘사된 장두건의 '여인' 도 볼 수 있고, 파스텔이나 수채로 그린 김종하의 탐미적인 '바다의 여인과 물고기'도 전시됐다.

단숨에 매끄럽게 표현한 손동진의 인체 누드, 이준의 충실한 풍경화 스케치, 감각적 스타일리스트 천경자의 꽃과 여인도 걸렸다.

박노수의 사실적 초상화에는 깔끔한 성격이 그대로 보이고, 이대원의 '소녀' 에는, 소년인지 소녀인지 구분이 잘 안되지만, 화가의 여린 심정이 담겨있다.

몇번의 붓질로 끝난 서세옥의 '굶은 개' '살찐 개' 는 비록 습작이지만 그림을 완성할 때 작가의 기분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느낌을 준다.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을 몇 개의 선으로 정확히 묘사한 최종태의 '집' 드로잉은 조각가뿐 아니라 화가로서의 범상치 않은 솜씨를 보여 준다.

전시회를 보노라면 드로잉과 함께 통용되던 '소묘'란 단어가 요즘 사라진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밑그림이 구상에서 비구상, 추상, 콜라주, 초현실주의 그림에까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드로잉(Drawing)이란 용어로 밖에는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최은주 덕수궁 분관장은 " 이제 드로잉은 유화나 조각의 이전 단계로 제작된 부속개념이 아니라, 독립적인 표현양식을 가진 그 자체로서 완성된 작품이라는 인식이 대두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 작품이 작가가 직접 소장한 것이라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많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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