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은 물론, 미국 여론 지도층에도 혼란과 우려를 남겼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인식, 특히 부시 대통령의 강경발언은 충격적이었다.미국에서도 외교안보 정책을 가다듬지 않은 부시 행정부가 성급한 강경자세와 엇갈린 메시지로 혼란을 초래한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충격과 혼란이 부시 행정부의 미숙함이 낳은 과도적 현상인지는 지켜 볼 일이다.
그러나 드러난 양쪽의 시각차는 분명 심각하다. 우리 정부는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대미관계와 정부의 신뢰를 걱정한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의 입장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인식 또는 자세와 관련해 몇 가지 고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부시 행정부는 북한문제가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지역문제이지만, 한국민에게는 민족의 안위와 장래가 달린 사활(死活)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안을 다룬 정상회담과 주변에서 부시 대통령과 고위 관리들이 거친 대북한 강경발언을 거듭한 것은 회담 상대인 한국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민의 이해와 정서를 모두 무시한 것이다.
미국 언론도 외교적 식견 없는 부시의 비외교적 발언을 지적했다. 영국과 독일 언론은 '부시가 김대중 대통령의 뺨을 때렸다'거나 '빗속에 세워 두는 홀대를 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한층 심각한 것은 미국의 처사가 대 북한 포용정책에 대한 이견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객관적인 유럽 언론은 미국이 북한과 관계개선을 동결한 주된 이유는 범세계 전략에서 나온 국가미사일방어(NMD)계획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고 지적한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명분 삼은 NMD를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려면, 바로 그 북한과 결코 화해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이다.
우리는 이런 지적이 전적으로 옳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설령 NMD가 미국은 물론, 한반도 평화유지에 긴요하다 하더라도, 한반도 문제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의 판단과 이해를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70년대 카터와 박정희 대통령의 회담 이후 가장 심각한 갈등이 드러났다는 지적을 유념한다면, 한국민의 정서 또한 크게 변화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부시 행정부가 제 자리를 잡으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포용정책의 골격을 유지할 것이란 미국 안의 낙관적 전망에 기대하고자 한다.
덧붙여, 우리 사회도 미국의 정책변화가 북한과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정권차원을 훨씬 넘어 국가와 민족의 이해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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