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깨끗하게. 우리나라 여성들이 갖고 있는 피부에 대한 집착이다. 화장할 땐 일단 피부를 덮어야 한다.아무리 '투명한 화장'을 외쳐도 비치는 기미는 용납 못한다. 메이크업 베이스-파운데이션-파우더를 빼먹지 않는다.
피부과엔 뾰루지 한 개 때문에 시름에 싸인 '환자'가 몰리고, 피부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요구르트, 썩은 우유마저 시험하는 데에 용감하다. 미백(whitening) 화장품이 이렇게 인기인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일본 정도다. 피부미용실과 스파 등의 각종 마사지 처치를 넘어 최근엔 '스케일링(scaling)'이 인기다. 치아 스케일링이 아닌, 얼굴 피부를 벗겨내는 스킨 스케일링이다. 오늘도 희고 고운 피부를 가지려는 한국 여성들의 노력은 참으로 눈물겹다.
몇 년 전까지 필링(peeling) 즉 피부를 벗기는 박피(剝皮)는 일부 극소수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레이저로 점만 빼도 신기해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이젠 마사지쯤이나 될까? 점심시간 잠깐 짬을 내 피부과에서 시술받고 오는 직장 여성도 있을 정도다. '스케일링'이라고 불리는 얕은 박피술이 개발된 덕분이다.
여드름 고민을 하는 10대부터 예비 신부, 서른이 넘어 얼굴이 칙칙해졌다고 느끼는 여성, 잔주름을 없애려는 50대 주부까지. 스케일링은 더 이상 소수 여성을 위한 시술이 아니다.
CNP 차앤박 피부과의 이동원 원장은 "요즘 피부과를 찾는 이들은 아예 '크리스탈 필링으로 해 주세요'라고 구체적인 요구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직장여성 김모(35)씨. "화장도 안 받고 뾰루지가 나서" 최근 점심시간을 이용해 피부과에서 스케일링 시술을 받았다. 먼저 레이저로 여드름 부위를 처치하고 염증을 짜낸 뒤 마사지하듯 화학물질을 바르고 얼음팩으로 진정시키면 끝이다. 약간 화끈거리는 느낌일 뿐 별다른 고통도 없다. 시술시간은 30분 정도지만 단계별로 기다리는 시간까지 1시간쯤 걸렸다. 시술 직후엔 얼굴이 불긋불긋했지만 곧 그는 화장이 잘 받는 느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여드름이 재발하지 않아 좋다. 앞으로 정기적으로 받고 싶다"고 말했다.
40대 주부 백모씨는 기미 때문에 온갖 방법을 다 써보다가 스케일링을 받았다. 그는 잠깐 외출할 때도 기미를 가리려고 늘 짙은 화장을 했다. 좋다는 화장품도 발라보고 피부미용실에서 수차례 기미 치료를 받아봤지만 기미가 주는 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요즘 1주일마다 반복해서 스케일링을 받고 있는데 기미와 입가 잔주름까지 옅어지면서 주위에서 "성형수술 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직장여성이나 주부만이 아니다. 기미와 주근깨로 사회생활에 곤란을 느낄 정도였던 직장남성 신모(46)씨는 매주 스케일링과 비타민C 이온치료를 넉 달이나 받은 끝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요즘은 재발을 막기 위해 한 달에 한번씩 스케일링을 받고 있다. 이밖에 여드름이 많은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오는 부모들도 많다.
기존의 박피술은 진피까지 벗겨내는 것이라 전신마취를 하고 1~2주 동안 꼼짝없이 집안에서 햇빛을 피해야 했다. 레이저ㆍ화학적 처리를 통해 진피까지 벗겨낸 후 피부를 잘 재생시키는 후처리를 통해 깨끗한 속살을 드러내는 방법이다.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시술은 아니다.
이에 비해 표피의 각질을 벗겨내는 데 그치는 얕은 박피인 스케일링은 극적인 변화를 낳지는 않지만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며, 비용(1회 15만원)도 150만원 이상 드는 기존의 박피보다 훨씬 싸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번 이상 받으면 깊은 박피 한 번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한다. 글리콜릭산 필, 쿨터치 레이저 박피, 광박피, 크리스탈 필, 해초 필 등이 그러한 예다.
이동원 원장은 "특히 글리콜릭산 필은 1~2주 간격으로 3~4개월 이상 받으면 피부 진피까지 재생돼 잔주름을 없애고 미백제가 잘 침투돼 기미 치료에 탁월하다"고 설명했다. 또 쿨터치 레이저는 피부표면을 급속 냉동시키면서 레이저광선이 피부에 닿아 표피 손상 없이 진피 재생을 자극, 흉터와 잔주름을 없애는 것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케일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과신은 금물이다. 기미나 잡티 등을 없애는 데에는 효과적이나 여드름 흉터, 노인성 반점 등은 레이저를 이용한 깊은 박피가 필요하다.
피부과 의사들은 "피부상태에 따라 적절한 치료법을 적용하고 화학물질의 농도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또 박피시술 후 관리를 잘 해야 피부가 제대로 재생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김희원 기자
■초호화 스파
피부를 위한 또 하나의 호사(豪奢)-스파(spa)가 있다. 서울 반포동 메리어트호텔의 마르퀴스 스파, 압구정동 분스파 등이다.
온천을 뜻하는 말이지만 목욕탕이나 사우나 정도를 떠올려선 곤란하다. 각종 기기를 동원해 산소를 들이마시는 산소 테라피, 센 수압으로 혈액순환을 돕는 샤워를 하고 천연성분만 쓰는 아로마 테라피 등이 있다. 이밖에도 각질을 제거하는 바디 스크럽, 부위별로 날씬하게 만든다는 바디 랩, 발 반사요법, 스웨덴식 마사지, 보습 처리 등 몸과 피부에 좋다는 것들이 즐비하다. 물론 전문 테라피스트들의 서비스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패키지의 경우 수십만원대. 식사도 하고 객실에서 쉴 수 있는 종일 프로그램도 있다. 보통 사람이 쉽게 부릴 사치는 아니다. 그러나 얼굴빛이 안 좋아졌다거나 피곤해서 화장이 안 받는다고 느끼는 부유층 여성들이 스파의 문을 연다.
■화장으로 하얀 피부 만들기
우리나라 여성들이 피부를 고르는 밑화장 제품(파운데이션, 파우더, 트윈케이크, 메이크업 베이스 등)에 들이는 돈은 한 해 약 3,000억원이다. 총 색조화장품 소비의 절반이 여기에 들어간다. 일본 여성과 흡사하다. 일본의 파운데이션류 점유율은 40%. 이에 반해 미국, 유럽 국가는 20%대다. 서구 여성들은 파운데이션 하나로 끝내는 게 대부분이나 우리는 메이크업 베이스부터 트윈케이크, 파우더를 모두 바른다. 뽀얗게 보이도록 투명 파우더를 덧바르기도 한다.
수입화장품 회사들은 한국 및 일본 시장용 파운데이션류를 따로 만든다. 지방시는 최근 피부 유형에 따라 골라 쓸 수 있고 탄력회복 기능까지 겸한 다양한 파운데이션 라인 뗑 미르와를 내놓았다. 이중 뗑 미르와 꽁빡뜨(컴팩트)는 한국, 일본 여성만을 위해 개발된 제품이라고 한다. 기술력 좋은 해외 기업조차 파운데이션류에선 국내 여성의 소비 습관을 잘 아는 국내 제품의 커버력과 색상을 참조해 제품을 개발한다.
특히 커버력이 좋고 쓰기 간편한 트윈케이크는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다. 로레알 파리는 우리나라 시장에 내놓기 위해 한국 디자이너가 개발한 트윈케이크 '필 내추럴'을 이제 다른 나라로 역수출하기까지 한다. "가장 까다로운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면 해외에서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최근 '투명한 화장'이 유행하면서 트윈케이크 매출은 약간 감소세다. 그렇다고 잡티나 주근깨를 용납할까? 절대 아니다. 한마디로 사용감은 가벼우면서 가릴 것은 다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미백기능 제품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유독 인기다. 로레알 파리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화이트닝 에센스는 아시아 전체의 스킨케어 제품 중 매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물론 유럽에는 아예 생산되지 않는 제품이다. 우리 시장엔 미백 전용 에센스, 미백기능이 포함된 로션과 크림, 기미 등의 결점 부위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미백제품 등 다양한 화이트닝 라인이 수도 없이 나와 있다. 국내 미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약 2,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더욱이 가격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얼굴이 하얘진다, 피부가 깨끗해진다는 소문을 듣고 검증되지 않은 요법을 시험하는 여성들도 많다. 우유, 두유, 요플레, 썩은 우유까지. 간혹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한가지. "피부가 맑아진다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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