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방문의 해'. 정부는 관광객 580만명을 유치하고 73억 달러의 관광수입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놓았지만 관광산업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는 부족하기만 하다.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관광연구원에서 관광산업의 전략을 짜내고 있는 이연택 원장과 관광산업의 일선에서 직접 뛰고있는 정운식 한국일반관광업협회 회장이 만나 관광 한국을 위한 구상을 이야기했다.
■정운식(鄭雲湜)
1935년 경기 수원에서 태어났다. 59년 중앙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64년 노스웨스트항공 한국총대리점에 입사하면서 관광업에 뛰어들었다.
71년 서울항공여행사, 86년 나드리세계여행, 90년 에주투어인터내셔널을 차례로 창업했으며 95년부터 국내 여행업체의 모임인 한국일반여행업협회 회장을 맡고있다.
98년부터는 서울시 관광진흥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이연택(李連澤)
1956년 경기 김포에서 태어났다. 79년 한국외국어대 이태리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관광산업정책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88년부터 한양대 관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98년부터 한국관광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2001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회 위원, 남북문화체육교류추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국제관광론' '국제관광산업전략'등의 저서를 냈다.
_ 정부가 94년에 이어 올해를 다시 '한국 방문의 해'로 정했는데, 과연 관광산업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이연택 = 그럼요. 세계의 관광객들이 지출하는 총액이 1년에 4,800억 달러나 됩니다.
일반 제조업과 비교하면 자동차 수출액 4,700억달러보다 많습니다. 세계 1위 산업이지요. 우리나라는 연간 수출이 1,700억 달러 정도인데 관광수입은 65억달러입니다.
4%가 채 안됩니다. 하지만 프랑스, 영국같은 나라는 10% 정도, 말레이시아 태국처럼 관광산업이 급신장하는 나라는 10% 이상입니다. 이런 산업을 어찌 등한시할 수 있겠습니까.
▦정운식 = 지금과 같은 지구촌시대에 관광은 우리의 이미지를 알리는 매우 중요한 수단입니다. 기업체도 매일 신문, TV에 광고하잖아요.
우리나라를 찾은 관광객들이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가면 그것이 나라 홍보고 우리 편을 만드는 겁니다.
한 해에 500만명 정도 관광객이 오니까 우리는 현재 관광 중진국은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관광산업에 대한 투자나 인프라는 초보 단계지요.
_ 우리의 관광 자원 자체가 관광 선진국에 비해 많이 떨어집니까.
▦정운식 = 자연조건만 놓고 보면 다소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자연조건만 관광 자원은 아니지요. 다른 나라에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모두 관광자원입니다.
이번 겨울에 강원도 스키장에 동남아 사람들 많이 온 것 아시죠? 동남아에는 겨울이, 눈이 없잖아요. 사람들 사는 풍습, 음식, 건물의 모양 하나까지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연택 = 사실 자연조건도 아주 떨어지는 편은 아니에요. 우리는 잘 못 느끼지만 서울 같은 자연조건을 지닌 도시는 흔치 않습니다. 서울에 온 외국 관광객 만나보면 북한산이랑, 한강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대도시에 어쩜 저런 산수가 있냐고요. 언젠가 한 외국인이 한강을 보고 "이 강이 중국서부터 흘러왔느냐?"고 묻더군요.
사시사철 풍부한 수량과 강의 규모에 놀란 겁니다. 런던에 템스강, 파리에 세느강이 있지만 한강에 비할 바가 못되죠.
경복궁만 해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다운타운과 고궁이 어우러진 게 멋있다고들 하지요. 참, 요즘은 우리 음식도 좋아들 하지 않습니까?
▦정운식 = 그럼요, 서울 북창동이나 인사동에 가보면 음식점 가이드북 들고 불고기집, 삼계탕집, 설렁탕집 찾아 다니는 일본인 관광객 많습니다.
서양인들도 불고기는 굉장히 좋아하죠. 일본인들은 백화점이나 김포공항 면세점에서 다이어트식품이라며 김치를 잔뜩 사가지고 돌아갑니다. 김이나 된장을 사가는 관광객도 있는 걸요.
▦이연택 = 그렇지요. 하지만 자연경관이나 우리의 풍습을 상품화시키는 능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지요. 관광, 레저시설도 부족하고요.
▦정운식 = 규제도 많아요. 골프장만 해도 골프도 치고, 먹고 자고 볼링 탁구도 치면서 며칠 묵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렇게 종합적으로 개발하려면 법이 가로막아요.
가격 경쟁력도 떨어지는데 가장 큰 요인이 호텔입니다. 태국 방콕은 8만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는 6만실인데 반해 서울은 2만실이 채 안됩니다. 호텔 방이 부족하니 방값이 비쌀 수 밖에요.
▦이연택 = 관광산업은 인근 국가끼리 경쟁하는 산업이 아니라 함께 이득을 보는 윈-윈(win- win) 산업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문제도 있어요.
북한에 막혀있어 제약이 많았지요. 싱가포르와 비교하면 대조적이에요. 동남아 교통의 요지라는 점을 충분히 활용, 싱가포르를 거쳐 주변 국가로 가는 관광상품을 많이 만들었지요.
인근 인도네시아 빈탄섬을 임차, 투자해 관광지로 만든 뒤 이 섬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싱가포르를 거치게 하지요.
또 대학은 세미나를 적극적으로 유치, 외국 학자들을 부른 뒤 관광에 나서게 합니다. 350만 인구의 도시국가지만 1년에 1,000만명 넘는 관광객이 오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우리도 앞으로 남북한 교류가 활성화되면 지정학적인 한계가 어느 정도 극복될 것으로 봅니다.
▦정운식 = 언어 소통의 어려움, 택시기사 횡포, 불친절 이런 기본적인 서비스 문제는 여전합니다.
▦이연택 = 그런 문제야 어디 한두번 지적됐습니까. 지금은 정부도 그렇고 시민들도 그렇고,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를 모을 때라고 봅니다.
▦정운식 = 며칠 전 남태평양 피지에 갔다 왔는데 고위 관료부터 청소부까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모두 "불라"라는 인사말을 하며 친절하게 맞아주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른 조건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그런 친절이 있으면 관광객이 많이 올 겁니다.
▦이연택 = 얼마 전 말레이시아에 갔더니 버스 정류장에 영어 일어 등 7개국어로 인사말을 써놓았더군요. '안녕하세요'라는 한글도 써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현지어로 발음을 적어놓았어요. 사람들보고 한국인 관광객 만나면 그렇게 인사하라는 뜻이지요. 그 정도로 열심입니다.
▦정운식 = 며칠 전에는 서울시청 앞을 지나가는데 어떤 사람이 제게 사보이호텔이 어디 있냐고 묻더군요.
가만 보니 한 서양인이 그에게 동대문시장 가는 서브웨이(subwayㆍ지하철)를 물었는데 이 사람이 명동 사보이호텔로 잘못 들은 겁니다.
우리가 외국어에 미숙하지만 그래도 관광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광업 종사자로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연택 = 사실 언어는 말이 아니라 매너입니다. 그 사람의 그런 태도가 그 관광객의 눈에도 좋게 비쳐졌을 겁니다.
_ 그렇다면 관광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급선무는 무엇일까요.
▦정운식 = 숙박시설의 문제를 다시 한번 거론하고 싶습니다. 객실이 너무 부족하고 비쌉니다. 방콕만 해도 별 다섯개짜리 호텔 객실이 60달러인데 우리는 200달러나 됩니다. 아무리 좋은 여행을 해도 숙박이 불편하고 비싸면 불만을 갖습니다.
테마파크도 있어야 하지요. 하지만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셜스튜디오 같은 이름난 테마파크 브랜드는 일본 등 다른 나라가 이미 선점했기 때문에 우리 나름의 브랜드가 필요하지요. 태권도공원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권도는 우리가 선점한 이미지잖아요. 전 세계에 태권도하는 사람이 4,500만명 정도 되니까 그들이 한번씩만 찾아와도 엄청난 관광효과가 있지요.
▦이연택 =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경북지방의 유교문화 유산 같은 것도 참 좋지요. 경복궁만 해도 충분히 다르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전통 공연을 하고 전시회도 하면 공연자, 기념품제작자, 음식점 운영자 등 1만명 정도의 고용효과는 있을 겁니다.
▦정운식 = 한국방문의 해가 관광객 숫자 놀음으로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기적으로 올해를 관광 인프라 구축의 해로 삼아야 겠습니다. 또 우리 국민이 외국에 나갈 때는 스스로가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보여 주는 대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주길 기대합니다.
▦이연택 = 정부는 이제 관광 시설을 사회 기반 시설로 인식하고 숙박시설이나 테마파크 등을 설치하는데 지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관광은 공급이 수요를 만드는 측면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보다는 우리나라를 먼저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우리 것을 먼저 알아야 외국 것도 더 잘 볼 수 있지요.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