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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녹슨 항공모함'과 윤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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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녹슨 항공모함'과 윤병철

입력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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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평!펑!'1991년 7월 15일 오전 9시 고급호텔과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는 서울 을지로 입구 번화가.

한여름 대낮 서울 한복판에서 터진 느닷없는 대포소리에 경찰이 긴급출동하고 행인들이 혼비백산하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기존은행과의 차별화에 나선 하나은행이 개업식에서 축포 3발을 쏜 것이다.

하나은행의 '튀는 행보'는 계속 이어졌다. 행훈(行訓)이나 행가(行歌)도 만들지 않았고, 30대의 새파란 직원을 지점장으로 임명했다.

윤병철(尹炳哲) 하나은행 회장(당시 행장)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다. 영국의 유력 금융잡지인 유러머니는 93년 하나은행을 '한국의 최우수 은행'으로 선정했다.

그 윤 회장이 지금 한국금융사상 초유의 금융실험에 착수했다.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내정자'로서 5개 부실금융기관(한빛ㆍ평화ㆍ광주ㆍ경남은행, 하나로종금)의 경영정상화에 나선 것이다. 깃발도 없는 임시막사에서 전투를 시작했다.

'지주회사 그룹'은 퇴역위기의 '녹슨 항공모항'과 같다. 5개 금융기관의 속을 들여다 보면 한숨이 나온다. 총자산이 100조원으로 국가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지만 속은 텅텅 비어있다.

정부는 이미 공적자금을 8조7,774억원이나 쏟아 부었고 앞으로 13조3,000억원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직원도 1만4,000여명에 달한다. 식량과 기름이 바닥을 드러낸 상황에서 병사(은행원)들은 지칠대로 지쳐는 상황이다.

윤 회장은 이 항공모함의 함장이다. 윤 회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이제까지의 경영성적으로 보면 함장 역할을 잘 할 것도 같지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윤 회장은 한국투자금융사장과 하나은행장으로서 틈새시장(니치마켓)에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주력 시장에서의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

한빛은행의 경우 '부실'의 명찰을 달고 있기는 하나 규모와 기능에서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금융기관이다. 단자회사에서 출발한 하나은행과는 비교할 수 없다.

경영외적인 여건도 만만치 않다. 내년 상반기에는 지방선거가 있고 월드컵대회도 열린다. 또 내년말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금융기관을 통폐합하려 할 경우 노조와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월드컵대회를 치러야 할 상황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지금으로서는 부정적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원균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치르고 백의종군했으나 원균이 왜군에 크게 패배하는 바람에 다시 지휘봉을 잡게 됐다. 남은 배는 고작 12척에 불과했다.

중앙의 조정에서는 대규모 전투는 피하라고 이순신 장군을 말렸다. 이순신 장군은 이 때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고, 하찮은 신하(이순신)가 죽지 않았습니다(상유십이 미신불사ㆍ尙有十二 微臣不死)"라는 장계를 올렸다.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로 울돌목(명량해협)에서 왜군 선박 수백척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 윤 회장은 경남 거제 하청중학교를 졸업할 때 은사로부터 '상유십이 미신불사'라는 휘호를 받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윤 회장이 과연 '녹슨 항공모함'으로 이순신 장군과 같은 대승을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윤 회장의 성공은 개인의 영광이자 한국 금융개혁의 성공을 의미한다.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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